칼럼.詩 > 이성보 칼럼, 詩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이성보 칼럼> 척서로 여름나기
기사입력  2019/08/19 [02:23]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 풍란 주천왕의 꽃     ©김성진

 

척서(滌署)로 여름나기

 

산과 들에 녹음이 짙을 대로 짙었다.
장마철이긴 해도 초복이 지나자마자 더위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예전엔 35℃의 기온이면 폭염 대접을 톡톡히 받았는데, 시방에 와선 걸핏하면 39℃를 웃돌고 있어 세상이 어찌 될련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비 오듯 흐르는 땀을 주체하지 못해 소나기라도 왔으면 했는데, 290㎜의 기습 폭우로 청주시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속보에 소나기 소리가 쑥 들어가 버렸다.


거제로 피서를 왔다며 아는 이가 인사를 했다. 호스 끝에 달린 분사기로 물을 주다보니 땀이며 물에 젖은 몰골이 말씀이 아니라서 저어했더니, 오히려 아름다워 보인단다. 아름답다니, 인사치레인 줄 알지만 싫지는 않았다. 왠지 그가 부러웠다.

 

바캉스니 피서니 하는 말과는 담을 쌓은 지 오래다. 하루라도 물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 상전들 때문에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물을 주다 말고 척서(滌署)라는 말을 떠올렸다.

 

하도 덥다보니 더위를 나타내는 말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무더위, 삼복더위, 불볕더위, 땡볕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 살인더위 등이다. 이중 찜통과 가마솥더위가 순위를 다툴 것 같다.


한자말은 더욱 심하다. 고염(苦炎) 극서(極暑) 극염(極炎) 노염(老炎) 대서(大暑) 대열(大熱) 맹서(猛暑) 번서(繁暑) 폭서(暴暑) 폭염(暴炎) 혹서(酷暑) 혹양(酷陽) 등 하나같이 아주 덥다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더위를 이기는 말도 다양하다. 더위를 견디는 내서(耐暑), 더위와 싸우는 투서(鬪暑), 더위를 막는 방서(防暑),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 더위를 가시게 하는 소서(消暑), 신선한 곳으로 옮겨 시원하게 하는 청서(淸暑), 더위를 씻어내는 척서(滌暑) 등이 눈에 띈다.


지금에서 와서 피서라는 말을 예사로 쓰고 있지만, 사실 우리 선조들은 피서라는 말 대신 더위를 씻어내는 척서나 소서라는 말을 썼다.


바캉스(Vacance)는 햇볕이 귀한 서구에서 햇볕을 맞으려 여름철에 바다를 찾는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더위를 비켜서 산이며 바다로 간다는 피서라는 말도 일본사람들이 남겨놓은 말이다. 피서는 바캉스처럼 휴가를 내고 집을 떠난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에 비해 척서는 집안에서 더위를 이겨낸다는 뜻이 담겨있다. 죽부인을 이용한다거나 우물물로 등목을 하는 등이 그것이다.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는 탁족이며 천렵이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

 

더위를 비켜서 산이며 바다를 간다는 피서보다는 더위를 씻는다는 척서가 한결 운치 있고 격조 높은 말이다.

 

부채를 손에 들고 나무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누워보니 가냘픈 나뭇가지가 바람에 떠는 모습이 보였다. 좀더 유심히 살펴보자니 그것은 떠는 것이 아니고 흔들리고 있었다.


밑동은 요지부동인데 가냘픈 가지들만 살랑거린다. 여린 가지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생존이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린 가지가 흔들리지 않으면 나뭇가지는 꺾어질 것이고, 가지가 꺾어지면 이듬해 나뭇잎이 자라지 못하여 탄소동화작용을 못하는 나무는 죽고 말 것이다. 저렇게 흔들려야 나무는 생명을 유지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살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부러지면 치명상이다. 그래서 나무는 부러지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흔들린다. 대나무는 큰 키대로 흔들리며 댓잎소리를 낸다.


나무그늘 아래서 살펴보니 6미터짜리 철주를 타고 끝까지 올라간 능소화 꽃의 흔들림이 보였다.


‘흔들려야 꽃이 피고, 흔들려야 생물이 살 수 있다’는 작은 깨달음 같은 것을 느끼고는 흔연했다. 나도 이 더위를 씻어내고 흔들려야겠다고 다짐하는 동안 공허함도 없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것은 죽음이라는 철학적 사유 때문이었다.


미풍의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난잎을 본다. 난잎도 흔들려야 더위를 이긴다. 그래야 연부병에서 벗어나 꽃눈을 틔우게 된다.

 

선풍기 하면 한 사람이 생각난다. 난실에 선풍기를 계속 틀도록 신신당부를 하고 출근길에 오를라 치면 대문을 나서자마자 집사람이 꺼버린다는 것을 뒤에 알았단다. 난값이 얼만데, 그깟 전기 요금 때문에 집사람이 선풍기를 껐다고 파안하던 형이 그립다.


연부병으로 골로 갔다고 애석해 하던 애장란 ‘신세계’와 더불어 그곳에서도 애란생활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거제가 통영의 이웃이라고 동생처럼 나를 아껴주시던 그는 고 김경효 형이다.


창밖엔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린다. 흔들려야 살아간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음미하며 척서로 여름을 날까 한다.

ⓒ 난과함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이성보 칼럼 척서로 여름나기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2019 대구자생란보존회 봄전시
광고
주간베스트 TOP10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