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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조 칼럼> 난(蘭)은 선(線)의 예술이다
기사입력  2020/05/04 [19:49]   정계조 국제동양란교류협회장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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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란인인물&행사사진 500점, 수국 250점, 제주풍광사진 250점 등  총 5.000점

 

▲ 한국춘란 황화소심 '관음'     ©일송 김성진

 

()은 선()의 예술이다.

 

내 책상 위에는 한국춘란 소심 한 화분이 놓여있다. 난인들이 선호하는 난은 아니나, 나는 잎의 자태가 아름답고 마음에 들어 일을 하다 말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상념에 잠기고 한다.  

 

가끔은 화분의 방향을 돌려놓기도 하고 자리를 옮겨가면서 감상한다. 그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진한 녹색의 난초 잎이 싱싱하고 힘이 있어 생동감과 기개가 넘치고, 엽선이 매력적이고 운치가 있어 보면 볼수록 자꾸만 빠져든다.

 

1985년 내가 난을 처음 시작할 때 일이다. 꽃이 한 대 있는 중국춘란 송매 1화분을 사서 안방 문갑위에 올려놓고, 난잎의 선과 꽃대의 어울림에 반해서 며칠 동안 넋이 나가도록 쳐다보았다. 처음 산채를 가서 채집해 온 야생 보춘화 잎의 매력에 빠진 것이 내가 난인이 된 출발점이기도 하다.

 

나는 난 전시장에 가면, 큰 상을 수상하지 못 하였지만 멋진 잎의 모습과 수선판 꽃 1~2대가 잘 어우러진 작품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랫동안 한국춘란을 해오면서 변함없이 좋아하고 매력을 느끼는 것이 난초 잎의 아름다움과 멋이다.

 

동양인은 유달리 선()의 아름다움에 심취한다. 예술에서의 선은 명확성과 동적인 율동감을  보여주는 등 광범위한 표현을 지니고 있다. 서양에서 말하는 선의 의미와 동양에서 말하는 선의 의미는 차이가 있다.

 

러시아 화가인 바실리칸디스키는 ‘회화에서 동양예술은 선의 예술이고, 서양예술은 면의 예술’이라 언급하면서 동양의 선은 개념적이고 관념적, 그리고 사의(寫意)적 이어서 자신의 정신세계의 표현이자 동시에 무한적인 공간의 표현이라고 했다.

 

모든 예술에는 형태, 색채, 선이 다 모여서 이루어지겠지만 민족적인 특성에 따라 예술적 요소로 중국은 형태를, 일본은 색채를, 한국은 선()을 택하였다. 한국인은 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선의 표현이 특히 돋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곡선을 좋아하면서도 단순한 곡선이 아닌 뻗음과 꺾임의 운치가 잘 어우러진 곡선미감을 찾았는데, 이는 우리민족의 심적 상징이다. 한국 고전예술에서의 선은 형태의 윤곽이나 인간 감정표현이 아니라 우주적 생명작용인 율려(律呂)의 율동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주변에는 선()의 아름다움이 많다. 산이 하늘과 맞닿은 선은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우며 신비롭기까지 하다. 부드러운 능선, 기암절벽의 선, 겹겹이 쌓여 유려한 선, 사람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하면서도 굴곡미가 뛰어난 선, 흐트러지면서도 세련됨을 잃지 않는 고아한 선이 나타난다.

 

한국인의 춤에도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단순하지 않고, 유순한 것 같으면서도 기개와 기가 살아있는, 틀에 박힌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예술적 선의 맛이 잘 나타난다.

 

일본인이면서 한국의 민속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야나기무네요시(1889.3.21. ~ 1961.5.3.)도 한국미술의 주도적 특징을 선()으로 보았다.

 

그 예로 한옥지붕의 선, 범종의 비천상, 고구려 벽화, 첨성대, 도자기와 항아리, 버선과 신발 등 한국의 예술품이나 생활용품에는 곡선의 아름다움이 담겨있다고 했다. 이러한 선()은 신명(神明)에서 비롯된 율려(律呂)의 선이고,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선이다.

 

난의 잎은 간결하면서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한국춘란에는 한국적인 선의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고 있다. 난 잎을 보면, 허공 속으로 뻗어나간 유려한 곡선미는 우리 산 능선의 부드러움과 은근한 곡선을 꼭 빼닮은 모습이다.

 

난초 잎에서 산의 만년침묵과 아름다움을 잘 응축한 선율의 영원한 자태를 보게 된다. 간결미 속에 풍만함이 있고, 가냘픔 속에 칼보다 무서운 지조가 있다.

 

은 몇 가닥의 잎만으로 늘 푸른 절개와 지조, 청아함과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상, 고결함까지 갖추었고, 그 속에 부드러움과 온유함도 품고 있기에 선비들이 그렇게도 난을 배우고 따르고자 했든가 봅니다.

 

난의 잎은 직선 속에 남실대는 곡선, 곡선 속에 공중으로 뻗어나간 시원한 직선이 있다. 잎 하나하나에 우리의 춤이 있고 휘몰이 장단이 있다. 난초를 보고 있노라면 대금소리가 들려온다.

 

난초의 선은 달빛을 타고 흐르는 대금산조의 가락같이 유연하고, 어디에도 막힘없이 영원의 세계로 흘러가는 음률을 닮았다. ()에 대한 예술적 감성과 선의 미학에 익숙해진 우리가 한국춘란의 자태에 매료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아진다.

 

한국춘란의 잎은 천차만별이다. 잎의 자태는 물론 엽의 길이, , 뚜께, , 끝마무리 등이 난마다 다 다르다.

 

잎의 자태별로 보면, 잎이 곧게 위로 뻗으면 입엽(立葉), 중간까지는 서다가 윗부분에서 늘어지며 중입엽(中立葉), 밑에서부터 약간씩 늘어져 유연한 선을 멋지게 나타낸 것을 중수엽(中垂葉), 밑에서부터 늘어짐이 심하면 수엽(垂葉), 수엽처럼 늘어지고 끝이 둥글게 말리면 권엽(捲葉), 잎의 끝부분이 아래로 늘어지지 않고 위를 향하여 마치 뭔가를 떠받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 이슬을 받는 잎의 모양이라 하여 노수엽(露受葉)이라 부른다.

 

잎폭의 넓이에 따라 광엽‧세엽, 잎의 길이에 따라 장엽(長葉)‧단엽(短葉), 단엽에 라사지가 있으면 단엽종(短葉種)으로 분류하고, 끝이 둥근 잎을 환엽(丸葉) 등으로 구분하여 부른다.

 

이러한 각양각색의 난초 잎은 저마다 나름대로 아름다움, , 매력, 운치 등을 가지고 있다. 입엽은 힘과 기개의 표상으로 짧을수록 더 돋보이다. 극단적으로 짧은 것을 단엽이라 하는데 작지만 웅장하게 보이는데 그 매력이 있다.

 

중입엽, 중수엽, 노수엽은 난초 엽선의 아름다운 매력이 잘 나타나고, 그 중에서도 노수엽은 품격을 더하는 형태라 할 수 있겠다. 수엽과 권엽은 꽃대와 조화를 이룰 때는 꽃을 돋보이게 하는 모양이 된다.  

 

동양란을 그린 묵화는 그림의 한 장르인데, 이를 묵란도(墨蘭圖)라고 한다. ()을 그린다고 하지 않고 난을 친다고 한다.

 

중국의 난초그림은 혜란과 일경구화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의 난 그림은 춘란도 제법 있다. 묵란도에서 핵심은 난잎의 선이다. 난을 친다고 할 때 치는 것은 난잎의 선을 치는 것이다.

 

난잎의 아름다움과 멋, 힘이 넘치는 기개 등을 잘 나타내야 제대로 된 묵란도가 될 것이다. 특별한 무늬도 없고 녹색도 아닌 검은색인대도 좋은 예술품이 되고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잘 나타내는 것을 볼 때, 난초는 소위 말하는 화예품이나 엽예품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예술적 요소와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아들 상우에게 보낸 편지에 보면, 난을 치는데 반드시 세 번 궁글리는 것으로 묘법(三轉法)을 삼으라는 말이 있다. 삼전법은 난화에서 난잎을 그릴 때, 난초가 갖는 엽선의 아름다움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하기 위한 방법이다.

 

추사가 그린 ‘불기심란도’는 춘란 야생지를 직접 답사하고 그린 난화로 보이는데, 야생 춘란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여 예술성이 높이 평가된다.

 

이토록 난초 엽선의 아름다움과 예술성이 높은데도 난인들은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난인이라면 난초 엽선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매료되기에 충분할 것인데 이를 언급하는 난인(蘭人)은 보기 드물다.

 

특히, 난초잎 본연의 아름다움이나 멋에 따르지 않고 희귀성에만 쫓다보니 단엽이나 입엽에 치중하는 것 같다. 난초라는 반려식물은 난인 스스로 그 아름다움과 덕성을 찾아서, 오랫동안 같이하고 즐겨야 하는 것이므로 선입견이나 편향된 인식을 갖는 것은 금물이다.  

 

난초 꽃을 감상할 때도, 꽃대가 난의 엽선과 잘 어우러질 때 꽃이 돋보일 것이다. 요즘 전시장에 가보면 꽃이 많이 달린 작품에 주로 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꽃과 잎이 잘 어우러져야한다는 것을 예()와 멋의 기준에 포함한다면, 꽃대가 2~3대일 경우가 작품성이 더 돋보일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는 난이 가진 청초함, 당당함,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긴장미 넘치는 기개, 고고함 등 난()이 갖는 덕성으로 보면 더욱 그러하다. 난은 국화와 장미, 튤립 등 여타 꽃과는 그 덕성이 다르고, 아름다움과 멋의 감상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이다.

 

엽예품 전시회에서도 중투부분이나 복륜부분 등에서 상을 받은 난을 보면, 난의 촉수가 너무 많다. 상을 받은 난의 대부분은 7촉이 넘고, 개중에는 10촉이 넘는 것도 있다. 촉수가 많은 난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 듯하다.

 

이는 엽예품에서 중요한 포인트인 엽선의 아름다움이나 멋을 간과하고 등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난초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덕성을 모르는 망측한 일이다. 엽예품이 선의 아름다움과 멋, 운치, 덕성을 잘 나타내려면 4~6촉으로 작품성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난인이 난우(蘭友)를 불러 꽃이 핀 난 한 화분을 앞에 놓고 차나 술을 한 잔할 요량이라면, 어떤 작품이 어울리겠는가? 당연히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난이 가진 덕성이 잘 나타나고, 꽃과 잎이 조화를 멋지게 이룬 작품이 좋을 것이다.

 

난인들께서 그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전시장에서 보는 느낌과 확연히 다르고, 각자에게 특별히 와 닿는 난도 생길 것이다. 나는 내가 명명한 ‘관음(觀音)’ 꽃을 피워놓고, 가까운 난인을 불러 차를 마시는 때가 가끔 있다.

 

그 때마다 엽선의 멋과 수선판 황화소심의 청초함과 포근함에 매료된다. 난의 아름다움은 선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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