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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미인박명(美人薄命)
기사입력  2015/05/06 [03:12]   이성보

인터넷신문 난과함께는

2015.5.1일 창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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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춘란 중투호     © 김성진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신주모시듯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특히 난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다. 성묘 길에서 캐 온 고향초라든가, 뜻있는 이의 선물을 받았다든가 하는 사연이 깊고 진할수록 애지중지의 도가 진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자기가 직접 산채한 만인이 괄목할 만한 명품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애장품을 순간의 실수로 잃었다면.....전북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에 봄은 깊었는데 가랑비는 내리고 안개는 짙어 부는 바람에 앞산 자락이 숨바꼭질을 하던 1987년 6월 어느날, H선생과 단둘이 아침 일찍 마을 뒷산을 올랐다.

 

이윽고 비도 멎고 안개도 걷히어 기분은 날을 듯 한데 이름 모를 교회의 낡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귀에 익은 찬송가가 사뭇 산채꾼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련만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경건한 시간'이라 자리에 선 채 비가 개인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이젠 산채도 병인 양, 함초로히 물먹은 민춘란만 보아도 마냥 즐겁다. 발걸음을 좀 빨리하여 H선생보다 50여 미터 앞서 들여다 보고 있었다. 오매불망 하던 속빛무늬를 만난 순간이었다. 육순을 눈앞에 둔 H선생이련만 연세도 잊고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엇다. 그도 그럴 것이 산채 6년 만에 속빛무늬를 만난 것이니, 그 기분 알고도 남음이 있다.

 

한촉 짜리 속빛무늬는 녹색의 깊은 모자 하며, 노오란 색이 많은 색깔이며, 어디를 보아도 나무랄데 없는 명품이었다. 뒷날 '천유희'로 명명 되었다. 천유희란 H선생이 두어달 전에 앞산 골짜기에서 만난 솔줄무늬에 붙힌 이름인 '천유군'의 배필에 해당하는 것으로 '천유군은 H선생 자신을, 천유희를 부인'으로 빗대어 부른 것으로 그 애지중지함이란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으리라. 아! 그러나 누가 알아쓰랴. 그 천유희가 비명횡사 하리라고.....

 

잠시 H선생을 소개하며, 상도동 숭실대 입구 삼거리 모서리에서 약국을 경영하시는데 그 한켠에다 샷시로 간이난실을 만들어 놓고 춘풍추우 난실만 들여다 보고 있는 난복이 충만(?)한 바로 그 어른이시다.

3년 전부터 휴일마다 산체에 임하는 '골빈당'이라 이름하는 우리 일행의 '당수님'이기도 하다.

 

 H선생은 평소 에프킬러용 스프레이를 이용하여 난을 스프레이하고 있었다. 사건(?)이 나던 날, H선생의 약국에 새벽 같이 찾아온 낯익은 여자 손임이, '일전에 사가지고 간 에프킬러의 스프레이가 좋지 않다'며 바꾸어 달라고 하면서 난실을 들여다 보고 수선을 피우는 도중, 또다른 손님이 두 사람이나 와서 주문에 응하다 카운터에 50세티 간격으로 세워 둔 난스프레이용 에프킬러 스프레이를 여자 손님이 바꾸어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평소 치밀하기로 정평이 난 H선생이련만 순간 깜박하신 모양이었다. 손님이 뜸한 시간에 진짜 에프킬러인 줄 꿈에도 생각치 않고는 난에 스프레이를 뿌리기 시작했었다. 그것도 애지중지하는 천유희부터 말이다.

 

용교리 다락골에서 거처를 옮긴 천유희는 명실공히 H선생 난실의 황후로서 그 용자를 뽐내고 있었고 주인의 축복 속에 출산 중이었다. 어미촉과 똑같은 푸른 모자를 뒤집어 쓴 새끼를 표토 위에 1센티 정도 내밀고 있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런 천유희였던 것이다.

 

독한 약 냄새를 맞고 이내 스프레이를 중지하였건만, 아뿔싸 이미 늦었다. 천유희와 천유군을 비롯하여 주위의 난들을 세제에다 씻어내는 응급조치를 하였으나 시간을 다투어 새끼 촉들은 까맣게 숨을 거두었고 천유희마저 치명상을 입고 잎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천유군은 남자(?)라 그런지 속잎만 타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비보를 접하고 골빈당원 몇 사람이 문병을 갔었다. '사람이 약화를 당한 경우에 비하면 얼마나 다행이냐'며 애써 태연한 척 하는 H선생이었지만, 낭패한 모습이 역력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안스럽게 했다.

 

백방으로 병구환을 하였으나, 열흘 후 천유희는 마지막 잎새를 떨어뜨리고 여리디 여린 한 개의 벌브만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행여나 하고 여린 벌브에서 새촉이 트기를 기다리며 반년이 넘게 라벨과 식재만 남은 분을 평소 그 자리에 두고 있었으니 H선생의 흉리가 어떠했을까.

 

몇년 뒤 영순위로 분양받으려던 내 꿈도 산산조각이 나서 나 또한 이렇게 섭섭한데, 하물며 장본인이야 일러 무삼하리요. '미인은 박명이요, 호사엔 다마라던가. 오호애재라, 천유희여! 천유희여!' 천유희는 평소 외도를 모르는 H선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애첩이 나니겠느냐'고 뒷날 천유희의 문상을 갔던 골빈당원들이 입을 모았다.

 

상처한 천유군의 배필을 구하려고 하는 H선생의 집념은 그 후 휴일을 거르지 않고 계속 뛰었지만, 천유희의 원혼(?) 때문인지 인연이 닿지 않고 있다. 하루 빨리 천유희 같은 속빛무늬와 연이 닿아 상처한 천유군이 재혼하기를 충심으로 기원하고 있다.

 

※1980년 대 필자가 전라도 일원에 산채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일들을 담담하게 적은 글을 책으로 엮은 『난을 캐며 삶을 뒤척이며』에 있는 글이다. 1980년 한국난계를 되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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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준 15/05/06 [18:00]
선배님들의 추억이 어린글 잘 읽었습니다. 그 안타까움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수정 삭제
베트남 15/05/12 [10:27]
존 글 잘 읽었습니다. 애란인이라면 누구든 있을 법한 일화네요 ^^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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