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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걸개사진의 여운
기사입력  2018/10/13 [20:31]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 석곡 소심 '조무'     ©김성진

 

걸개사진의 여운

 

백로(白露)지나자 조석으로 선들바람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숫제 재앙에 가깝든 폭염이었건만 계절의 변환에는 도리 없이 항서를 쓰고 말았다. 낮아진 기온에 살만하다 하였더니, 이번엔 폭염에 맥을 못 쓰고 사라졌던 모기란 놈들이 제 세상을 만난 양 극성이다. 성능이 꽤 쓸 만한 연무기로도 이놈들의 맹위를 감당 못할 정도이니 다한 말이다.


모기에 뜯긴 관람객에게 미안함을 말할라치면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시골엔 으레 많은 게 모기가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머잖아 모기 또한 맥을 못 추리라.

 

폭염과 모기에 시달리면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리란 낙관적인 마음가짐, 즉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헤아려 보았다. 이곳의 매표소를 두고 집사람과 나는 인생교육장이란 말을 자주 들먹이곤 한다. 이십수 년 세월 동안 못볼 것을 숱하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집사람은 진상손님들에게 학을 뗀 나머지 이제는 웬만한 일엔 웃어넘길 정도로 내공이 쌓였다. 내공만 쌓였으면 좋으련만 백발과 주름도 함께 늘어났으니 이를 어쩌랴. 이곳은 검표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매표소에서 매표만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매표담당은 집사람 몫인데 어쩌다 자리를 비울 때가 있다. 매표원을 기다리는 시간이 좀 길어지면 그냥 입장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경우 십중팔구 관람 도중에 일행 중 한 사람이 나와 매표를 한다.

문제는 허겁지겁 도망치듯 나가는 사람들이다. 관람 내내 입장료를 내지 않고 어떻게 빠져나갈까 하는 궁리로 작품의 감상은 뒷전이었지 싶다. 입장료를 후불하리란 긍정적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하였으련만, 공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스타일 구기기 일쑤다. 어떤 때는 안쓰러운 생각에 모른 체하기도 한다.

인생교육장엔 배우는 게 참 많다. 작년 추석 연휴 때의 일이다. 오른쪽 다리에 심한 통증이 왔었다. 대퇴부에서 무릎 사이가 저리고 아파 걸음을 못 걸을 정도였다. 마침 역대 최장 연휴라서 병원이 쉬고 있을 때라 목욕탕에서 물폭탄을 맞으면 되리라고 자가진단하여 며칠 계속 맞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연휴가 끝나자마자 들린 병원에선 허리디스크라 진단했다. 나를 진료한 신경외과 의사 자신도 허리디스크 환자라며 프롤로 치료를 권하여 따르기로 했다. 6년 전에 받은 프롤로 치료로 지금까지 이상이 없단다.

 

일주일 간격으로 세 번의 주사를 맞았다. 처음엔 주사 한 방으로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졌으나, 차츰 시간이 지나자 불안할 정도로 약간씩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다 일에 열중하다 보면 통증을 잊어버리곤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디스크란 놈이 ‘아플까, 말까’ 하고 약을 올린다고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아예 아프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곤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아프지 않다는 긍정적인 생각, 이로 인해서 통증을 잊은 지 반년이 지났다.

 

긍정의 힘에 대한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마을 다리 밑에 걸인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다리 입구에는 다리를 놓기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한 걸인은 그 기념비에 침을 뱉으며 언제나 욕을 해댔다.

“에이, 양심 없는 놈들, 돈 많은 것들이 생색 내기는…”  그러나 한 걸인은 늘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참 고마운 사람들 아닌가. 우리에게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주고, 많은 사람을 건너가게 해주니 말일세. 나도 언젠가 이 사람들처럼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후 그 다리 옆에 새로 큰 다리가 세워졌다. 그리고 기념비에 새겨진 이름 중에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졌던 그 걸인의 이름도 들어 있었다. 그는 넝마주이를 시작으로 열심히 일하여 마침내 건재상을 경영하는 부자가 되어 기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침을 뱉으며 욕을 했던 다른 걸인은 여전히 다리 밑에서 살고 있었다. 새 다리 밑으로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일전에 외우(畏友)의 모친상에 문상을 갔었다. 자당께선 연세가 아흔넷이었다. 남들은 호상이라 하나 상제에겐 그 말도 서운하게 들렸으리라. 빈소 옆 장례식당 벽면에 걸개사진 두 장이 결려 있었다. 두 장의 걸개사진은 다섯 자 정도 크기로 고인의 미소 띤 얼굴에 오른손을 치켜든 모습을 담았는데, 내용은 같은 것이었다.


자당의 인자한 미소에서 고종명을 떠올렸다. 고종명(考終命)은 인간의 오복 중 가장 중요한 복으로, 자기에게 부여된 천명(天命)의 소임을 마무리 했을 때 비로소 편안하게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사진 속의 치켜든 손은 마치 천명의 소임을 다하시고 미소로 작별을 고하는 듯하여 어떤 커다란 가르침을 받은 것 같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외우의 형제들은 효자로 소문나 있기에 그 어머니에 그 자식들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장례식장에 걸린 두 장의 걸개사진은 문상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지 싶다.

 

긍정의 힘은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의 삶은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고 했다.

양란(養蘭)은 축복이란 긍정적인 생각이라면 명품 소장이 무슨 대수랴. 고추잠자리 군무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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