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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배려, 그 쉽고도 어려움
기사입력  2018/11/24 [06:04]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 대만춘란 비아란 백화소심     ©김성진

 

배려, 그 쉽고도 어려움

 

 

가을이 여물어가고 있다. 산야엔 눈길 닿는 곳마다 온통 가을색이다. 한로(寒露) 지나자 조석으로 오싹 한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만추로 치닫고 있는 이 계절에 진홍색의 마삭줄 단풍을 즐기는 것도 청복이지 싶다. 카톡방에 상찬하는 마삭줄의 단풍을 올렸더니 모두가 탄성을 자아냈다.

 

 

태풍 콩레이, 흔치 않다는 10월 태풍이라는데 고얀 놈이 적잖은 상처를 남겼다. 무사히 지나가길 빌고 또 빌었는데, 기도발이 약했는지 낭자한 잔해에 할 말을 잊었다. 더구나 공들인 거제 장가계라 칭하는 석주(石柱)도 꽤 피해를 입어 이를 보수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


작업장에서 새참으로 마시는 막걸리의 안주거리는 맛동산 따위의 과자다. 오전에 먹다 남겨둔 안주거리를 찾았더니 길고양이들이 채간 뒤였다. 맛들인 길고양이들은 진종일 작업장 주변을 맴돌았다.

 

재미삼아 정다운 목소리로 야옹아 하면서 과자를 던져주곤 했더니, 눈만 마주쳐도 도망가던 길고양이들이 곁에까지 다가왔다. 정에 굶주린 길고양이, 사람을 피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짧다고 하던가. 길고양이에게 과자를 던져주면서 배려를 생각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하면서 백미러를 일일이 손으로 접곤 한다. 연식이 오래된 고물차이고 보니 자동 조절이 안되기 때문이다. 주차장에서 백미러를 접어두는 것은 남의 차에 대한 배려다. 출발하면서 백미러를 원위치해야 하건만 접은 채로 출발하여 몇 번이고 당황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뒤차가 클랙슨을 몇 차례나 울렸다. 위반한 것이 없는 터라 나하곤 상관없겠지 하였는데, 신호대기 중 뒤에서 누가 급히 달려와 내 차의 양쪽 백미러를 펴주는 게 아닌가. 계속된 클랙슨 소리는 백미러를 펴라는 경고음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둔함을 탓하기엔 너무 자신이 한심하여 쓴웃음을 지었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네가 모는 고물차, 접힌 백미러를 보고 안타까움에 몇 번이고 경고음을 보냈으나 반응이 없자 신호대기 중 직접 차에서 내려 펴준 것이다. 이럴 수가. 그는 노오란 어린이 학원차를 모는 젊은이였다.


감격한 나머지 몇 사람에게 이 일을 얘기했다. 다만 잔소리꾼 집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해봤자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느냐는 잔소리가 무서워서다.

 

이곳 예술랜드 일우에 민속전시관이 있다. 명색이 민속전시관이나 비닐하우스에 꾸며져 있다. 외견은 말씀이 아니나 나름 공을 들였다. 이것저것 수십 년 수집한 민속품으로 꾸려놓았는데, 도난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때마다 허허실실을 들먹이곤 한다.


전시품마다 수집에의 사연이 있다. 그중 시누대로 만들어진 동고리에 살가운 눈길을 보내곤 한다. 십수 년 전 중장비 기사라면서 오래된 한옥을 허무는 작업 중인데 뒤주랑 쓸 만한 물건이 보여 급히 전화한다고 했다.

 

예술랜드의 민속전시관을 둘러보았는데 이 물건이 필요할 것 같아서란다. 전화를 받자마자 30여 분 거리라 급히 차를 몰고 갔더니, 작업을 중단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누대 동고리는 그때 구한 것이다. 얼마간의 사례를 하겠다는 나의 제의를 끝내 거절하는 그에게 음료수 한 박스를 억지로 건네주었다.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에 일부러 전화를 하고 작업을 중단한 채 기다려준다는 것은 대단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일까. 선진국의 척도는 남에 대한 배려에 있다는 주장에 나는 선뜻 동의한다.


불교의 가장 큰 덕목은 자비라고 한다. 자비에 대해 한 일본인이 쓴 책에서는 ‘불해(不害)’라고 했다. 불해는 살생하지 않는 것, 도둑질이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음행(淫行)하지 않고 술 마시지 않는 것으로, 이 모두가 남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일본 사람을 좋아할까만 공중도덕을 철저히 지키는 그들,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은 본받아야 하리라.

지난 번 청마 북만주 문학기행 때 일행 중 돈을 더 내고 혼자 방을 쓰는 사람이 있었다. 참 돈도 많구나 하였더니, 알고 보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다.


층간 소음이 있을 경우 텔레비전 소리도 줄이고, 밤늦게는 세면기의 물도 조심스럽게 내리고, 한밤중에는 변기의 물을 아예 내리지 않는 것도 위 아래층에 사는 사람을 배려해서가 아니겠는가.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흑인 배우라는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은 네 자녀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할리우드에서 흔치 않는 배우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난 언제나 이렇게 말해요. 여보, 당신이 옳아요”라고 했다.

세상에 갈등이 없는 부부가 있겠는가. 갈등은 그때그때 해결하는 것이 상책이라 했다. 갈등을 해결하는 비법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따뜻하고 살가운 말이다. 그 배려하는 말 한마디에 행복이 있다.

 

지난 날 채란길에서 생강근에서 올라온 쓸 만한 난을 만나고는 나머지 생강근을 그 자리에 묻어두곤 했다. 두고두고 재미를 보자는 심산이라기보다 뒷사람을 위한 배려에서였다.


나는 여생의 목표를 욕을 적게 듣는 것으로 정했다. 남을 배려함도 욕을 적게 듣는 일이라 믿는다. 늙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만은 늙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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