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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단감 한 상자
기사입력  2019/01/07 [01:10]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단감 한 상자

 

잠시 한눈파는 사이 계절은 겨울의 초입에 와 있다. 스산한 날씨에다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보는 심사가 처연해지기 일쑤다.


만추, 정감이 가는 말이다. 만추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짙어만 가는 단풍과 낙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올해의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은 모르긴 해도 지난여름의 폭염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아픔 뒤에 성숙이 오듯이 말이다.


노오란 팽나무 낙엽을 25년째 쓸고 있다. 커가는 나무 등걸과 함께 낙엽의 양도 많아졌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잎을 죄다 떨구는 팽나무다. 잔머리를 굴려 잎을 조금 남겨놓을 만도 하건만 매정하리만치 한 잎도 남기지 않고 나목이 되고 만다.


낙엽을 쓸다 말고 지인이 보내온 문자 “얍삽하게 살지말자”라는 메시지를 떠올렸다. “얍삽하게 살지 말자”는 인근 통영 어느 식당의 벽면에 걸려있는 액자에 담겨 있단다. 조금은 서투른 붓글씨이기에 누구의 글씨며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고 물었더니, 여주인은 본인이 직접 쓴 것이며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라고 하더란다.


‘얍삽하다’는 간사스럽다, 치사하다, 야비하고 약삭빠르다는 뜻으로 쓰고 있으나 사전엔 ‘염치없이 얕은꾀를 써서 제 잇속만 차리려는 태도가 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곳은 명색이 관광업소이나 입구가 빈약한 터라 입장료 때문에 크고 작은 실랑이가 항다반으로 일어난다. 경로니, 국가유공자니, 단체입장이니 하면서 요금을 깎자는 실랑이다.

 

아무 말 없이 매표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보일 정도이니 다한 말이다. 어쩌면 외양이 그럴싸해야 대접받는 우리나라일진데 빈티가 나는 입구이고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공짜를 좋아하는 인간 심리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매표소인지라 매표를 담당하는 집사람은 20년이 넘는 세월에 내공이 쌓여 요금 할인보다는 나오실 때 차를 대접하겠노라고 제값 받는 노련함을 보이곤 한다.


며칠 전 대구에서 온 다섯 명의 일행에게 마지못해 일인당 천원씩 할인을 해주었는데, 나오면서 입장료를 깎은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깎은 요금의 두 배인 만원을 굳이 손에 잡혀주더란다.


남편 작품을 제대로 보아주는 눈을 가진 고객도 있으니 조금은 위안을 받았다고 환히 웃었다. 그 웃음은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다,

 

도배하듯 널려있는 입구의 낙엽을 쓸다 버려진 명함 한 장이 눈에 띄었다. 꽤 미인형의 얼굴사진이 담긴 ‘대전광역시 중구의회 김옥향 의원’의 명함이었다. 뒷면에 ‘더 낮은 자세로 소통하고 실천하겠습니다’라는 구호 아래 민원청취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순간 이곳을 다녀갔나보다 하고 전화를 걸고 싶었다. 전화를 건다는 것은, 더군다나 대인관계 지능지수가 두 자리 숫자라고 놀림을 받는 터라 대고객 서비스 차원이기도 했다.


전화를 걸어 명함 얘기를 하며 이곳을 언제 다녀가셨냐고 했더니, 거제도엔 가본 일이 없다고 한다. 지역구 주민도 아닌 사람에게 상냥한 말씨에 친절이 묻어나기에 얼굴만 미인일 뿐만 아니라 말씨도 곱다고 하면서 내친김에 대전 중구를 넘어 나라의 큰 인물이 되어달란 당부까지 했다.

 

초선이라며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겠단 다짐과 함께 다음에 거제에 들릴 기회가 있으면 꼭 찾아뵙겠단다. 전화를 끊고 나서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면 가진 건 넉넉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 부자는 바로 마음부자다.


어느 마을에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두 아들은 효심이 깊었다. 큰아들은 그 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반면에 작은아들은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를 모시는 큰아들은 호의호식에 관광까지 시켜드리며 편히 모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작은아들 집에 자주 머물렀다. 큰아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어머니께 물었다.


“우리집은 음식이나 잠자리나 모든 면에서 편하실 텐데 왜 자꾸 불편하고 형편이 좋지 않은 동생 집에 머물려고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 동생은 매일 저녁 식사가 끝나면 내 방에 와서 이 늙은 어미의 손과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말동무를 해주거든.”

 

좋은 집, 좋은 옷, 좋은 음식은 당장의 환심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따뜻한 마음은 얻을 수 없다.

 

며칠 전에 단감이 가득 담긴 제법 큰상자의 택배를 받았다. 보낸 이가 이틀 전 단감을 보낸다고 전화를 했는데 옆자리에 몇 사람이 환담 중인지 조금은 왁자했다.

 

난우와 함께 한자리에서 내 얘기가 나왔는지 지난번 고희 기념 북콘서트에 함께 하지 못했음을 미안해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베풀었던가 하면서 상자 속의 단감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발그스레하게 익은 단감에 그의 고운 마음씨도 물들어 있었다. 그는 한국난연합회 전 이사장 홍대표 형이다.


인생 제3막이 시작된 지금, 지난 세월에 얍삽하게 살지는 않았는지 자꾸만 뒤가 돌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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