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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도둑
기사입력  2015/04/12 [02:14]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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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망도 소용없고 자물통도 부질없다. 털겠다 마음만 먹는다면 털고야 만다'
이게 요즘 도둑들의 신조라고 한다. 뛰는 도둑에 나는 경비가 필요한 세상인데 우리는 나는 도둑에 벌벌 기는 보안을 자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털리고야 마는 것이다.
도둑 한 명에 경찰 열 명이 못 당한다는 말이 요즘처럼 절실히 가슴에 와닿는 때도 없다. 사실 도둑들이 난을 훔쳐가는 유형은 그동안 많이 변해 왔다. 난 가게나 타인의 난실을 구경하다, 그들 말대로라면, 자신의 의지로는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슬쩍하는 우발적 타입에서 시작되어 어마어마한 계획을 세워 몇 번씩 방문한 뒤 조직적으로 로프를 이용하거나 땅굴까지 파면서 털어가는 계획적인 도둑까지 세월 따라 급격히 변천되어 왔다.

우발적 난 도둑은 그래도 얼마나 갖고 싶었으면 그렇게까지 되었겠느냐고 동정심을 얻지만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도둑들은 정말 일말의 동정심도 줄 수 없는 간단히 말해 '용서받지 못할 놈' 들이다.
그들 도둑놈들은 난이 좋아 기르기 위해 그런 수단을 동원한 게 아니라 오로지 남들이 돈이 된다고 하니까 훔치는 것뿐이다.
그들은 난만을 훔쳤지만 도둑맞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난에 쏟은 온갖 정성과 사랑 그리고 투명한 아름다운 영혼까지 송두리채 도둑맞은 것이다. 마음을 도둑질해 갔으면 차라리 난과 함께 몽땅 가지고나 갈 것이지 흩어지고 부서져 내동댕이친 화분 속에 갈기갈기 찢어서 남겨두고 가 버렸으니 저주받을 놈들이다.
흩어져 아무렇게나 버려진 빈 화분들을 바라보는 그 심정을 도둑들이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분노에 그치지 않고 극한 마음까지 갖게 만든다. 돈과 물건을 잃으면 아깝고 불편하지만 분노나 저주 같은 감정의 파도는 일지 않는다. 반면에 영혼을 강탈당하면 가슴이 아프고 원망하며 저주하고 분노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대도들이 날뛰니 남의 물건 훔쳐가는 소도둑은 도둑 취급도 받지 못하는 세상이라 도둑들이 도둑질을 해도 도무지 부끄럽게 생각하지를 않는 것이다. 무슨 영웅담쯤으로 여기는 인간말자도 있다고 들었다.

도둑의 세계를 보면 난 도둑은 좀도둑에 불과한 어중이 떠중이가 하는 도둑질이다. 도적질을 제대로 하려면 돈이 있는 곳을 털어야지 마음이 있는 곳을 망쳐서 그저 푼돈이나 만지려고 해대는 작자들은 옳은 도둑이라 할 수 없다. 성공해도 제대로 된 장물아비나 만나야 푼돈이라도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난이 제 놈들 주제에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줄 알고 남의 난실을 뒤집는다. 소장자에게는 보석보다 더 소중하지만 도둑들에게는 한갓 비싸다고 알려진 풀일 뿐이다. 요즘은 두서너명이 조를 이루어 철망을 자르고 개까지 독살하며 여의치 않으면 땅굴 파기도 마다않는 악질적인 난 도둑들이 전국을 상대로 난실을 털어가고 있다고 한다.
특히 밤비 오는 날, 소리와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치밀함도 갖고 있는 게 요즘 난 도둑의 특징인데 한 번 침입하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난들을 싹쓸이로 뽑아간다. 문제는 이들이 훔친 장물을 뻔히 그럴 것이라 짐작하면서도 값싸다는 이유로 사주는 상인과 애란가가 있다는 데 있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게 자본주의 경제원칙이다. 장물인 줄 알면서 사두었다. 2~3년 후 팔면 많은 이득을 챙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완전히 새 촉들로 바뀌려면 적어도 5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야 한다. 5년 동안 비록 적은 돈으로 구입했다 하더라도 자금의 회전이나 새 촉의 증가 등 종합적인 수지들을 모두 합해 결산해 보면 그렇게 큰 이득을 취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런 물건을 사는 게 과연 현명한 일인지 모르겠다. 만약 발각되면 말 못할 고초까지 더해서 덤으로 받게 되는데 상인이라면 더 이상 영업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애란인이라면 취미생활에 많은 장애가 따를 것이다.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남들의 시선이나 생각에 앞서 자신의 양심에 언제나 떳떳하지 못한 난을 배양하고 있다는 아주 어두운 그늘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취미는 누가 무어라 해도 마니아의 양심에 한 점의 거리낌도 어두움도 없어야 한다. 만약 그런게 있다면 마음을 순화하고 위로 받으며 그곳에 몰입하는 정서 자체가 오염되고 혼탁되어 맑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혼탁한 세상살이에서 유일하게 맑고 밝은 정신으로 행하는 게 취미이기에 현대를 사는 우리가 빠져들고 매료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바에야 굳이 취미생활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가?

10여 년 전의 일이다.
경남에 거주하는 어느 애란인의 고백을 들어보자.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젊은 나이에 비교적 한국춘란에 눈을 먼저 돌린 애란인이었다. 그러나 갖고 싶은 난은 많았지만 그에겐 그런 의욕을 충족시킬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
어느 날 신장 개업한 난 가게에 들러 많은 사람들이 흥정하는 와중에 그야말로 충동적으로 두 촉짜리 자화를 훔쳤다고 한다. 장난처럼 뽑아든 난이 일단 뽑히고 나니 도로 넣을 수 없게 되어 재빨리 양복 앞섶에 넣어 집으로 왔다.
이렇게 어렵잖게 해버린 행동이 얼마나 자신을 괴롭힐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는 데 한두 해가 지나면서 난이 자라 세력이 붙으면서 꽃이 피니 그의 가슴에는 꽃색 같은 어둠이 자리하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찾아가 훔쳐간 사실을 털어 놓으니 '그럴 리가 없다. 도난 사실도 없으며 그날은 자화가 한 분도 거래되지 않았다' 고 이상한 눈초리로 그를 경계하더라고 한다. 자신이 개업한 날 거래 장부까지 꺼내 보여주며 '그런 장난을 하면 못 쓴다'는 나무라는 소리만 듣고 돌아왔다고 한다.

마음이 홀가분하기는 커녕 시간이 갈수록 더 이상 난을 배양할 수가 없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다 보니 자신의 난들도 잘 자라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도저히 견디다 못해 그는 천신만고 끝에 난 가게를 했던 사람이 사는 곳을 알아내어 훔쳤던 자화를 돌려 줄 생각으로 다시 갔더니 그날이 바로 그 상인의 삼오날이었다고 한다.
결국 조문만 마치고 되돌아온 그는 결코 돌려줄 수 없게 된 자화로 인해 자신의 애란생활도 엉망으로 변했으며 잘하던 생업도 이상하게 점차 기울기 시작하더라고 한다.

그동안 마음 한 곳에 항상 어두운 잔영으로 심어진 양심에 짓눌려 얼마나 불행한 날들을 보냈는지 모른다고 그는 지나온 날을 후회했다. 이제 보상마저 할 수 없게 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난에 흥미를 가지게 된 그 자체부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먼저 자질부터 기르지 못한 채 무조건 좋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마음이 그런 불행을 자초하게 만들었다고 그는 생각하는 것 같았다. 훔친 한 분의 난이 그 애란인의 인생을 송두리채 망가뜨리고 말았다. 훔치면 그만일 줄 알았는데 결국은 그것이 화를 자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사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훔친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취미를 택하고 그것에 몰두해 마음의 안정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돈만을 알고 돈에 의한 가치만으로 취미를 접하면 그건 취미를 대상으로 하는 상술일 뿐 취미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취미와 돌벌이를 병행하려고 하는데 이론상으로는 상당히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같이 병행할 수 있다고 해도 취미가 우선인 경우에만 사람은 더 행복해진다.
전말이 이러한데 도둑질로 또한 도둑질한 물건으로 그런 행복을 얻으려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수백, 수천 명을 속일 순 있어도 오직 자신의 마음 하나는 속일 수 없다는 게 인간의 비극이며 또한 행운이기도 한 것이다. 결코 수요가 없으면 공급은 자연히 없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난 도둑들의 도적질을 원천봉쇄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도둑이 자질이 부족한 애란가라면 모르지만 좀도둑이라면 과감히 장물은 거절하는 난문화가 하루속히 자리해 가슴 아픈 애란인들이 이 땅에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이원기 님의「참 난인을 기다리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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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unmun 15/05/05 [02:08]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사연이네요.
난초가 무엇인지?
취미로할때는 모르지만 돈과 관련되니
모든 난초가 돈으로보이고
순수한 마음은 사라지고
욕심이 앞서니...
처음처럼 늘 즐거운 애란생활을 그려봅니다.
감사합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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