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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일생일란이 될 뻔한 한국춘란 단엽복륜 '신라'
기사입력  2015/04/17 [04:41]   김성진

▲ 한국춘란 단엽복륜 '신라'     ©일송 김성진

 

사람 사는 일이란 비슷비슷한 되풀이 속에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세월이 간다.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 보면 한 생애도 후딱 지나가 버릴 것만 같다. 관음소심의 청향에 매료되어 난에 입문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30여 년이란 세월이 훨씬 넘어섰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다고 생각하니 흘러간 날들의 아름다운 사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일생일란(一生一蘭)’은 평생에 본인이 가장 좋아하고 아끼는 한 분의 난을 소장하는 것을 말한다.

 

1990년 4월 평소 난 채집을 함께 다녔던 W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포에 사는 남농 선생의 제자 L화백이 일송을 만찬에 초대하였으니 함께 가자", "다음날은 명품이 많이 나온 곳에 산채계획도 있다"고 한다. "얼씨구나! 좋다" 쾌히 승락 하였다.

 

토요일 오후 W부부와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목포 L화백의 자택에 도착하였다. L화백의 동양화 그리는 모습도 구경하고 난실을 쭉 둘러봤다.

 

2층 난실에는 산채냄새가 물씬 풍기는 한국춘란들로 가득하였다. 난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피는데 범상치 않은 1촉짜리 복륜이 눈에 들어왔다. 잎에는 잔잔한 라사가 깔렸으며 백색의 갓과 바탕색이 진녹으로 대비가 좋았다. 잎의 자태도 계곡형으로 옥아 죄고 있었다.

 

키는 제법 컸지만 집에서 재배하면 잎이 짧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단엽복륜일 가능성이 높았다.

깜짝 놀라 최고라고 탄성을 질렸더니 W사장이 허벅지를 콕콕 찌른다. "난을 구입하려 왔는데 최고라고 하면 어떻게 하느냐?" 면서 눈짓을 한다.

 

사전에 언질을 조금 주었더라면 눈치 없는 행동은 안했을 텐데··· 뱉은 말을 거두어들일 수도 없어 "이 난실에서 이 복륜이 최고"라고 정정을 하였다.

 

매매를 한다고 하니 잘되었다 싶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산지는 어딥니까?"

"목포 근교에서 전문 산채인이 채집하였습니다."

 

"가격은 얼마입니까?"

"850.000원에 구입하였는데 멀리서 초대하여 왔으니 950.000원이면 드리겠습니다."

마음속으로 웬 횡재야! 하고 쾌재를 불렀다. W사장과 공동구입을 생각하고 우리가 가져가겠다고 하였다.

 

다음날 목포근교의 야산에서 산채를 하는데, 문제의 복륜이 아른거려 산에 있는 많은 난들을 보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보고 다녔다.

 

대충 산채를 끝내고 저녁식사까지 한 후, 고속버스에 탑승을 하였다. 출발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문제의 복륜을 L화백이 가져올 생각을 않는다. W사장에게 "왜 L화백이 복륜을 가져오지 않느냐?" 고 물었다.

 

"자기는 중투 때문에 왔는데, 복륜은 별 생각이 없어 가져오지 말라"고 하였단다. "그럼 진작 이야기를 하지" 화가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함께 간 상대편을 배려하다가 생긴 너무나 큰 실수였다.

 

며칠이 지났는데도 문제의 복륜이 아른거려 잠자리에 들어도 숙면을 할 수가 없었다. 이틀 정도 지났는데 M난원의 H사장이 능곡 선생과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술을 한 잔 하면서 문제의 복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더니 H사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며칠 후 H사장이 그 복륜을 4.000천을 주고 구입하여 일본 난상인 H씨에게 20.000천에 팔았다는 소문이 서초동 주변 애란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실을 확인해 본 결과 소문대로 벌써 일본의 H상인에게 넘어갔다. 배가 아파 며칠을 끙끙거렸다.

 

이 사실을 부산의 S난인에게 이야기 하였더니,

"난 꽤나 한다는 사람이 그런 난도 못 잡고 놓쳤느냐", "일송이 그 난을 소장하고 있었으면 매일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문안인사를 올렸을 건데." 점잖은 S난인이 꽤 오랫동안 약을 올렸다. 명품의 주인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H사장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저녁을 산 득을 톡톡히 보았다고 생각하며 자위하였다. 세상만사 베푼 만큼 돌아온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얼마 후에 H사장에게 물었다. "왜, 950.000원에 판다고 한 난을 4.000.000원이나 주었나." 라고 물었더니

"일송이 최고라고 하였다'면서 싫으면 관두라"고 하더란다.

 

2년 후 문제의 복륜은 일본에서 H씨가 '신라'로 명명하였으며,

그 해 일본춘란전국대회가 열린 날 2촉에 140.000천에 매매가 되었다는 난과생활 기사를 접하였다.

이후 '신라'는 촉당 엄청난 가격으로 한국난계로 돌아왔다. 종자를 팔아넘긴 대가를 톡톡히 치룬 셈이다.

 

 '신라'는 엽예품 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권불십년'이 아니고 20여 년 정도 한국춘란계를 석권하다시피 하였다. 2~3년 전부터 번식이 많이 된 탓으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촉당 가격이 많이 하락하여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도 옛날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고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하여 올해 신라 2촉을 구입하였다.예전에 비하면 헐값이 되어버린 '신라'지만 상좌에 모셔놓고 매일 알현을 한다.

'신라'여! 어디에 계시다가 이제야 일송을 찾아 왔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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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삼족오 15/05/22 [19:37]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신라 최고가에 사서 최저가로 판 기억이 있습니다. ㅎ 일송님 로그인이 안되네요. 회원가입은 했는데.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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