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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희망(希望)과 무망(無望)
기사입력  2020/06/08 [01:00]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렌드 원장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2020.6.7일 현재 사이버전시회에 1.990점을 전시중입니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 창간5주년(2020.5.1) 기념

5.000작품 사이버전시회 개최

● 일 시 : 2020.4.1(수) ~ 12.31(목) 8개월. (매일 10점이상 게재)

● 장 소 : 인터넷난신문 '난과함께' www.nantogether.com

● 출품전시작 : 한국춘란 3.000점, 풍란, 석곡, 새우란, 한란, 구화 등 1.000점

애란인인물&행사사진 500점, 수국 250점, 제주풍광사진 250점 등  총 5.000점

 

▲ 거제자연예술랜드의 복사꽃과 장가계     ©김성진

 

希望無望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기러기가 북쪽으로 돌아가고(候雁北), 초목에 새싹이 난다(草木萌動)는 우수절이다. 우수는 눈이 녹아서 비나 물이 되는 날이련만, 몸과 마음은 풀리기는커녕 꽁꽁 얼어붙었다.

 

코로나19라는 괴질 때문이다. 겨울은 추운 것이 순리다. 춥지 않는 겨울, 별일이다 하였으니 기어이 일이 터지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불경기로 어렵던 차에 코로나19는 그야말로 직격탄이다.

여기가 명색이 관광업소고 보니 하루하루를 버티기가 힘겹기만 하다.

 

낙향한 지 어언 27년이다.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시작된 일이 칠십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으니 길다면 긴 세월이다.

 

나는 신산이 계속된 27년의 세월을 두고 질곡(桎梏)의 세월이라 칭하고 있다. ()은 죄인의 발에 채우는 차꼬이고 곡()은 죄인의 손에 채우는 수갑을 가리킨다. 돌이켜 보면 그 질곡의 세월을 견딘 것은 희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27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196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절해의 고도 로벤섬 감옥에 투옥된 흑인 죄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 감옥은 다리를 뻗고 제대로 누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좁았고, 변기 대신 찌그러진 양동이 하나가 감방구석에 놓여 있었다. 면회와 편지는 6개월에 한 번만 허락되었고, 간수들은 걸핏하면 고문하고 짓밟았다. 그는 이미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지위는 상실되었고, 견딜 수 없는 모욕과 고통만 주어졌다.

 

그가 감옥에 끌려간 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살던 집을 빼앗기고 흑인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땅으로 쫓겨났다. 수감 생활 4년이 되던 해 모친이 돌아가셨고, 그 이듬해에는 큰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감옥살이 14년이 되던 해 맏딸이 결혼하여 낳은 아기의 이름을 지어달라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손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던 중 맏딸이 면회를 와 편지로 청한 아기의 이름을 지었는가 물었다. 그는 말없이 찌든 주머니에서 꾸겨진 메모지 한 장을 꺼내 딸에게 건네주었다. 딸은 그 메모지를 보고 펑펑 울고 말았다. 딸의 눈물로 얼룩진 메모지에는 아즈위(Azwie, 희망)”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후로도 온갖 치욕을 당하면서 13년 간이나 더 옥살이를 하고서야 마침내 풀려나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44세가 되던 1964년부터 71세가 되던 1990년까지 무려 27년 간이나 정치범이란 죄목으로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다.

 

그 비운의 주인공이 바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가장 먼저 했던 일은 흑백분리정책(apartheid)으로 자기를 박해하고 고통과 치욕을 안겨주었던 정적들을 모두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이었다.

 

잊지는 않지만 용서한다(forgive without forgetting)'는 분노하는 흑인 청년들에게 그가 한 말이다.

 

그는 1993년 노벨평화상을 받았고, 2013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계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인간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사람이라고 추모했다.

 

27년이라는 그 길고 절망의 세월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나는 한 순간도 아즈위(희망)를 포기한 적이 없다.”

 

영국의회의 중앙홀에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적 인물 가운데 영국 하원의원들이 뽑은 영웅 1위는 영국인이 아닌 넬슨 만델라이며, 2위는 마거렛 대처, 3위는 윈스턴 처칠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일 년을 준비한 크고 작은 행사들이 취소 내지 축소 되는가 하면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닌 모양이다.

 

난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봄 전시회가 취소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해온다. 이달 말에 시작하기로 한 거제시농업개발원의 난 아카데미도 연기를 통보해왔다.

 

달포 전에 발을 헛디뎌 엎어지면서 팔꿈치를 찧었는데 정작 통증은 어깨 쪽에서 왔다. 운전을 못할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었는데, 나으리란 희망으로 계속한 물리치료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절망과 고통이 쌓여서가 아니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무망(無望) 때문이다.

내가 겪은 질곡의 27년 세월, 넬슨 만델라의 27년에 비하면(아니 비하기조차 불경스런 일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라며 위안을 받는다.

 

희망찬 내일은 기도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을 갈고 닦는 현실적 몫을 다하는 길밖에 없다. 春來不似春이 빈말이길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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