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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농업명장 이대건의 한국춘란> 원예 치료의 오르가즘
기사입력  2020/08/01 [17:08]   이대건 대한민국농업명장

 

 

 

▲ 대한민국농업명장 이대건 박사     ©김성진

 

 

원예 치료의 오르가즘

 

난초는 삶의 고단함을 내려주는 신비한 약리성이 있는 반려 식물이다. 원예치료라는 학문은 누구나가 녹색으로 귀의하려는 유전자가 존재함으로, 녹색은 보약과 같은 색이라 정의한다.

 

우리는 난초를 통해 "행복과 즐거움이란 열매이자 가치"를 통해야만 약성이 발휘된다. 이 약성을 난을 오래했던 그렇지 않튼 누구나 자신의 것으로 스스로가 꼭 만들어서 섭취하여야만, 소중한 시간과 돈이란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게 된다.

 

이 약성을 깊이 있는 난초 작품 활동과. 아름다운 녹색의 여가 활동으로 스스로 취하는 분들과 이 약성을 널리 공급하기 위해 난을 판매하거나 생산하는 분들과는 차이가 있다.

 

전자는 보신(힐링)을 하는 분이 되고 저를 포함한 후자는 보신을 즐기려는 분들을 위해 서비스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난초는 한번입문하면 잠시 쉬었다가도 또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난을 하다가 그만두면 잠시 쉬는 것이라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가 난을 하면서 본능에 의해서든, 필연에 의해서든, 우연한 기회에 의해서든, 다른 취미나 유사성이 높은 취미를 경유한 마지막이 난이라고 하는 이유는 황홀한 오르가즘이 있기 때문이고 강하게든 약하게든 길든 짧든 체험을 하기 때문에 끊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예를 들어 필자처럼 난을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는 원예치료적인 힐링(보신)의 효과는 거의 없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다.

 

그러나 취미인 들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난을 기르고, 생산하고, 작품을 구상하고, 전략적 유효 품종과 여건에 알맞는 작황의 포기를 들여와 작품 활동을 하며 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고 또 이력이 생기면 심판도 하고 하는 일체의 과정은 오르가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늘 애호가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르가즘이 어떤 것인지를 평생 모르고 난을 하는 분들이 실제로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상당수가? 교육의 부족이거니와 농작물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자화상이자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난을 생산해 부업으로 염두에 두는 경우는 더 심각하다.

 

나의 교육과목 1~3강에는 작품 과정을 지도하는데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최면을 걸어준다. 그래야만 아! 이런 게 오르가즘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 된다.

 

이때마다 나의 오르가즘은 회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마차를 끄는 마부의 오르가즘 격이라교육생들과는 급이 달라 늘 여러분들을 부러워한다. 삶이 무엇이든가? 행복추구이다. 오르가즘은 취미나 문화에서 만들어지는 값진 열매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도달한 분이 작가이다. 작가 중에서도 프로 작가이다. 프로 작가를 양성하는 기술적 지위를 확보한 사람이 최고이다.

 

그러나 행복 순은 꼭 그렇지만 않다. 가볍게 난을 즐기고 돈을 염두에 두지 않고 난을 기르는 분들은 돈을 써가며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취미를 하는 만큼 최고로 행복하다. 마치 해외의 아름다운 해변에 휴양을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휴양지에 콜라 팔러 와있는 격이니 차원이 다르다.

 

한국춘란 잠깐 20년 잠깐 몇 억 이다. 이런 분들이 제대로 된 오르가즘 한번 느껴 그 짜릿함을 맛보아야 인구가 늘어난다. 나는 난을 배워 보려는 고객 분들과 방문객들에게, 오르가즘에 대하여 항상 주지 시키고 알려준다.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분들과는 달라져야 한다. 오르가즘을 맛보아야 한다. 그 오르가즘은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니다. 농작물에서 미술품으로 격을 높여 여러 가지 본인의 취향과 생각을 난초의 잎과 꽃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다.

 

작품 원칙에 입각한 옵션을 갖춘 전략 품종을 설계하고 찾고 구해 작품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과 선수로서의 활동과 수상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게 아니라면 야생초를 예쁘게 기르는 것과 아름다운 다육식물을 기르는 것과 차이가 날까? 의문이다. 난초를 해서 불행해졌다면 아니한 만 못한 꼴이다. 행복이란 최고의 가치는무엇을 어떻게 배워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정교하게 이해하고 설계하여서 실행하지 않으면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진다. 또 손에 들고 있어도 먹는 방법을 몰라 평생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가 일쑤다. 이런 안타까움은 줄여나가려는 스스로의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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