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蘭 역사와
(2020.9.16일 현재 사이버蘭전시회에 3.740점을 전시중입니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 창간5주년(2020.5.1) 기념
12.000작품 사이버蘭전시회 개최
● 일 시 : 2020.4.1(수) ~ 2021.3.31(수) 12개월. (매일 10점이상 게재)
● 장 소 : 인터넷난신문 '난과함께' www.nantogether.com
● 출품전시작 : 한국춘란 10.000점, 풍란, 석곡, 새우란, 한란, 구화 등 1.500점
수국 250점, 제주풍광사진 250점 등 총 12.000점
蘭香을 일러 德香이라 하더이다
우수절이라서인지 겨울비 치고는 가늘고 조용조용하다. 계절의 바뀜이 어찌 이리 정연한 질서 속에 이루어지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3월을 기다리는 간절함 때문인지 2월의 날짜 수가 이삼일 적은 것이 다행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혹한에 놀란 가슴이라 지레 오는 봄이 반갑기 그지 없다. 아란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배진수 형이 이십수년 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주소를 묻더니 『同好同樂 30』이라 제한 아란회 30주년 기념집을 보내왔다.
‘화려한 난, 값비싼 난들에게만 눈길이 주어지는 난계에서 달밤의 흰 박꽃 같은 아란회의 수수함이 어찌 빛을 발할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는 배진수 회장의 발간사에 들어있는 글이다.
지척에 있다면 아란회 30주년 축하주라도 나누었으면 좋으련만, 지면으로 축하주를 권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결례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아란회와는 작고하신 김경효 선생이 회장으로 계실 때 지싶은데, 회보 ‘我蘭’에 글을 하나 실은 적이 있다. 옛날을 떠올리며 책장을 넘기는 도중 나 또한 즐거워졌다.
난을 하는 맛이 이런 것이려니 하면서 옛 선비들에게 난이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기로 했다.
조선시대에 집에 난을 심으면 돋아나기는 하는데 향에 차이가 있었다. 향의 짙고 옅음에 따라 심은 사람의 인덕이 표출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덕이 없는 사람은 아예 난 심는 것을 두려워해 이를 기피했다. 곧 난향은 덕향(德香)으로 측량했으니, 선비사회에서 난에 대한 의식이 어떠하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옛날 선비들은 자신이 거처하는 사랑방의 당호(堂號)로 백란당(百蘭堂)을 가장 선호했다. 100분의 난이 들어있는 방이 아니라 난심(蘭心)의 질적 크기를 나타내고 그에 동일화하려는 선비정신의 발로에서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상소문이나 인재 발탁을 위한 추천문에 난이 수시로 등장한다. 이를테면 ‘난과 쑥이 섞여있다’고 하였음은 옥석(玉石)이 섞여 있음을, 발탁되지 못한 선비를 두고는 ‘깊은 산골 개울가에 늙어가는 난 한 포기’로 비유했다.
그런가 하면 숨어 있는 인재를 일러 ‘심어도 피우기 힘든 난’으로, 대망을 품은 인재를 ‘언제 꽃 피울지 모르지만 반드시 피고 마는 난’에 비유했다.
옛 선비들은 자신의 정신적 수범이요, 곧추세워야 할 그 정신의 감시자로 방안에 난분이나 묵란도를 걸어 놓는 것이 관례였다. 난이 지닌 정신에 자신을 동일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난을 두고 빼어난 네 꽃이란 뜻인 사일(四逸)의 으뜸으로 치고, 가까이 두고 싶은 사우(四友)에 맨 먼저 꼽았다. 또한 네 꽃 사애(四愛)가운데 하나로, 청아한 다섯 꽃이란 뜻인 오청(五淸)에 포함시켰다.
난의 꽃은 요염하거나 화려하지도 야단스럽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외양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내심 즉 난심이 동양사람을 매혹시켜 왔다.
난이 사군자 가운데 으뜸이요, 군자란(君子蘭)으로 불린 데서 알 수 있듯이 바로 군자의 표상이었다. 난이라는 식물보다 난이 내포한 그 정신에 투철했다는 차원에서 옛 선비들의 난문화를 특징지을 수 있을 것이다.
난우들의 모임에서 지금의 난계가 난장판 같다는 후배의 말이 왠지 나에게 하는 질타같기만 하여 부끄러워졌다. 세월이 지나가면 나아지리라고 하면서 다윗왕의 반지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다윗왕이 궁중의 보석 세공인을 불러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나를 위하여 반지를 하나 만들어라. 그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그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거라. 그 글귀는 또한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도 나를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느니라.”
왕의 명령을 받은 보석세공인은 곧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지만, 그 안에 새겨 넣을 글귀를 찾지 못해 애를 태웠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솔로몬 왕자를 찾아갔다.
그에게 왕자는 “왕께서 승리의 순간 이 글귀를 보면 곧 자만심이 가라앉을 것이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 글귀를 보면 이내 표정이 밝아질 것”이라며 글귀를 말해주었다.
“다 지나가리라!” 그렇다. 다 지나가고 말고.
3월이면 난 전시회가 봇물을 이루리라. 난을 한다면서 주변사람들의 눈총을 받는 일은 없는지 뒤돌아볼 일이다. 가장 위대한 복수는 용서라고 하던가.
난을 대하기가 민망할 때가 많은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