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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어둔 하늘 아래에서
기사입력  2021/01/06 [22:53]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원장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2021.1.5일 현재 사이버전시회에 5.410점을 전시중입니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 창간5주년(2020.5.1) 기념

12.000작품 사이버전시회 개최

● 일 시 : 2020.4.1(수) ~ 2021.3.31(수) 12개월. (매일 10점이상 게재)

● 출품전시작 : 한국춘란 10.000점, 풍란, 석곡, 새우란, 한란, 구화 등 1.500점

                     수국 250점, 제주풍광사진 250점 등  총 12.000점

 

▲ 차귀도에서   © 김성진

 

어둔 하늘 아래에서

 

庚子年이 저물어간다. 세상이 온통 우울한 회색빛이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 희망이 사라진 생기 잃은 표정들로 해서 사람을 대하기 두렵다. 매스컴마다 ‘사람 접촉 최소화’니, ‘사회적 거리두기 적극 동참’을 외치고 있으니 죽은 세상이 되었다.

 

지인 몇 분이 차례로 “당분간 집에만 계세요”라는 어느 의사의 당부 글을 카톡으로 보내주었다. 시골에 있는 나에게까지 보내온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내용의 카톡이나 문자메시지를 받았지 싶다.

 

수도권엔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가 광범위하게 퍼져 어디서나 코로나 지뢰밭이 되어 대폭발 직전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3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만지작거리고 있다니 그 심각성이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화자찬의 K방역, 분노할 기력도 없다. 당분간 집에만 있을 수 있다면야 무슨 걱정일까만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그럴 수도 없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라 함은 모르긴 하나 각자 도생이지 싶다. 마치 바둑에서 내 말을 먼저 살리고 남의 말을 잡는, 당나라 고수 왕적신의 위기십결에 나오는 ‘我生然後殺他’처럼 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지난 시간은 과거에 묻어 버리고 새해를 맞을 자세를 가다듬기도 하였는데, 자세를 가다듬기는커녕 하루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날이 계속 되고 있으니 사는 게 버겁기만 하다.

 

30년 가까이 한해도 빠짐없이 연하장을 보내온 지인이 있다. 수년 전부턴 다들 연하장을 보내지 않는데 그는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올해는 연하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며칠 전엔 상주로부터 정중히 조문을 사절한다는 문자를 받곤 꼭 가야 할 문상을 못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태가 변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初唐의 시인 유정지(劉廷芝)는 인생의 무상함과 세월의 속절없음을 한탄하여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흰머리를 슬퍼하는 늙은이를 대신하여 슬퍼함)이란 시를 남겼다.

이 시 작품 중,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이 두 구절은 설명을 가할 필요가 없을 정도 유명하여 애송하는 사람이 무척 많은 줄 알고 있다. 해마다 피는 꽃은 한 모습인데 세월 따라 사람은 늙어 모습이 같지 않단다.

 

자연의 섭리는 변치 않고 그대로이나 흐르는 세월에 사람은 모습뿐만 아니라 인심 또한 조석변이라, 어두운 현실을 묘사하였기에 지금껏 회자되지 싶다.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도 여순 감옥에서 이를 휘호했다. 뽕나무가 변해 바다가 되었다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도 이 유정지의 시에서 비롯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작금의 상황은 너무나 위중하니 조신하고 볼일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였다간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프랑스에 이런 우화(寓話)가 있다.

 

폴과 베르나르가 다리에 전상(戰傷)을 입고 야전병원 같은 병실에 입원을 했다. 마사지사가 와서 다리를 치료할 때마다 폴은 비명을 지르면서 아프다고 야단인데 같은 치료를 받으면서도 베르나르는 태연자약,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하도 신기해서 치료사가 병실을 나간 뒤에 폴이 물었다.

 

“여보게, 베르나르, 자네 다리는 무쇠냐, 나무토막이냐? 어쩌면 그렇게도 천연스럽게 그 아픈 마사지를 견뎌내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베르나르가 대답한다. “이 벽창호 같으니라고. 그래 내가 아픈 쪽 다리를 내놓도록 바보 멍텅구린 줄 알았나?” 베르나르는 멀쩡한 다리를 내맡긴 것이다.

 

영리한 베르나르, 그러나 결국 그는 아픈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죽은 듯이 숨을 죽이고 이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영리한 베르나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될 일이 아니다.

 

때가 때인지라 위기극복에 관한 책이 많이 팔린다고 한다.

시중유화(詩中有畵)요, 화중유시(畵中有詩)라,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고 하였으니 난은 그 자체가 시요, 그림일진데 어쩌면 지금이 난과 더욱 가까워질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첫 한파에 진저리를 치면서 이웃이 건네준 김장김치를 안주하여 생탁 한 잔을 들이켰다.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을 읊조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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