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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야윈 돈
기사입력  2021/03/23 [17:24]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원장

 한국난계 變해야 산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2021.3.22일 현재 사이버전시회에 6.320점을 전시중입니다)

 

▲  제주수국 원판화 '추사'     ©김성진

 

야윈 돈

 

눈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절인데 꽃샘추위가 유세를 떨고 있다. 득세하고 나면 내려놓기 싫은 것이 자연도 마찬가지인가보다 하고 쓴웃음을 짓는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나 남녘땅엔 동백꽃이 한창이다. 혹한에도 쉬지 않고 꽃망울을 키워온 동백이다. 고혹적인 꽃의 자태는 보는 이마다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동백꽃은 인고의 응축이기에 낙화된 뒤에도 의연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코로나19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들에게 인내의 소중함을 동백꽃이 알려주는 것 같다.


입춘방(立春榜)을 써서 붙이고 기다린 봄이건만 세상을 뒤덮은 잿빛은 요지부동이다. 그래서인지 설이 되어도 거창한 새해의 꿈을 품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도 먹구름이 끼이고 보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낙천적인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하지만 어쩌랴, 죽기로 하고 버텨야 살아남는다.

 

추위가 심했던 지난달 하순 어느 날이었다. 후정에서 돌 작업에 열중이었는데 부부가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왔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개점휴업 상태라 매표소를 비웠기에 나가실 때 계산해도 된다 했더니 표정이 밝아졌다.


늘어선 미니 장가계 석주를 보고는 부인이 가우디 얘기를 하면서 극찬해 마지않았다. 가우디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건설을 위탁받아 평생을 바쳤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바로 안토니 가우디다.

 

그리곤 두어 시간여 경내를 둘러보고는 입장료를 내겠다며 나를 찾았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이긴 하였지만 내 작품을 알아주는 눈빛에서 백만 원군을 얻은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차를 대접하며 부부의 이름을 물은 뒤 평소의 장난기가 동했다.


책에다 연명으로 서명을 할 텐데 “행여 이혼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의아해하는 부부에게 연명이 적혔는데 갈라서면 책을 찢을 수도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런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말라고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지인 열 사람에게 거제에 가면 이곳을 들리도록 권유하라 했다. 두 사람이 열 명씩이면 나에게 12만 원의 돈이 들어온다고 했다.


차를 다 마시고 남편 되는 사람이 지갑을 꺼냈다. 나는 한사코 돈을 받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손소독제 용기 밑에다 돈을 두고는 도망치듯 떠나는 게 아닌가. 부부가 놓고 간 돈은 5만 6천 원이었다.


나는 넋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돈은 각각 두 번씩 접은 오만 원권, 오천 원권, 천 원권이었다. 그 돈들은 야윈 돈이었다. 두툼한 다발에서 나온 돈이 아닌 궁짜낀 지갑 속에 간직한 야윈 돈이었다.


가난한 사람(?)의 지갑을 턴 미안함과 작품을 알아준 고마움 등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곤 어금니를 깨물며 다짐을 했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리란 다짐이었다.

 

나는 75년을 어려운 가운데 용케 버텨왔다. 그것도 하고 싶은 일을 원 없이 하면서 말이다. 이를 두고 나는 천우신조라 말하곤 한다. 그런데 불운으로 해서 행운을 잡은 사람도 있었다.


1979년 호주의 무명 배우가 길거리에서 술 취한 세 남자와 시비가 붙은 바람에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배우는 다음날 중요한 오디션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얼굴이 온통 상처와 멍투성이가 되었으니 결과는 불을 보듯 했다.

 

그러나 배우는 포기하지 않고 오디션에 참석했으나 마음속으로는 기대를 사실상 접었다. 얼굴이 엉망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통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했다.


그는 대본을 보고 몇 가지 장면을 연기했다. 감독 겸 제작자라는 사람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조지 밀러라는 사람이었다. 연기가 끝나자 조지 밀러가 일어서서 그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악수를 청했다.


“오늘 오디션을 위해 얼굴을 일부러 그렇게 만든 건가?”
“아니……, 어제 술 취한 놈들하고 문제가 좀 있어서……”
“잘 됐어. 당신이야 말로 우리가 찾던 사람이야.”


무명 배우의 이름은 멜 깁슨이었고, 그들이 만든 영화는 ‘매드맥스’였다. ‘매드맥스’는 흥행 돌풍을 일으켜 멜 깁슨을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조지 밀러는 멜 깁슨의 망가진 얼굴이 마음에 들어 캐스팅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싸움에 휘말려 입은 부상이 인생역전의 계기로 작용한 것이다. ‘매드맥스’의 주연에 캐스팅되기 직전까지 멜 깁슨은 지지리도 운이 없는 무명 배우였다. 그런데 그런 불운이 뜻하지 않은 구타를 당하며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행운’으로 바뀐 셈이다.

 

3월이 되어야 비로소 본격적인 한해가 시작된다고 했다. 어렵사리 난 전시회도 열린다. 코로나19의 예방 백신 접종도 시작되는 모양이다.


세 살 경풍에 죽으나 팔십 노망에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 하지 않던가. 죽기를 각오하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다. 뉘 알리오, 열심히 살다 보면 멜 깁슨 같은 행운이 올런지.


따뜻한 봄날에 다시 오마고 한 야윈 돈의 부부 이름을 차마 밝히지 못한다. 형편을 모르는 터라 행여 누가 될까 해서다.


「백년을 살아보니」의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는 65세에서 75세까지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걱정이 태산이다.
3월엔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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