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난계 變해야 산다"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蘭 역사와
(2021.12.7일 현재 16.048점의 난관련 자료를 기록보존하고 있습니다)
한국춘란 중투복색소심 '천운소(天運素)' 이야기
조원상은 경북 상주 사람으로, 40대 중반의 나이에 이미 한국난계에서는 잘 알려진 난인이다.
그가 28살 젊은 나이에 난을 하게 된 것은 원로 난인인 부친 조홍성 씨 영향이다.
그는 한국춘란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한결같으며, 특히 신품종 개발에 의욕을 보여 '천운소'라는
한국춘란 복색소심 대명품을 개발하였다.
그는 일찍이 난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난취미계에 대한 동경이 매우 컸다. 그러던 차에 90년도
중반, 부친이 그의 사업장 한쪽에 난실을 증축하면서 본격적으로 난을 하게 되었다.
난초 관리가 일상이 되고, 짬짬이 산채도 다니고, 부친을 모시고 난행사는 물론 전시장이나 판매장에 부지런히 다녔다. 한국춘란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난계의 분위기도 익숙해지면서 한국춘란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었다.
2000년쯤 되었을 때 그는 난에 대한 분별력도 생기고 난계의 흐름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는
부친이 전국대회 등에 난 작품을 많이 출품하지만 큰 상을 받지 못하여 애태우는 모습이 안스러웠다. 그의 부친이 구입하여 애지중지 모아둔 난에서는 그 정도의 종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전국대회에서 큰 상을 받을 만한 신품을 개발해서 아버지에게 선물을 해아지' 하는 작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안테나를 세워 종자를 구입했지만, 지나고 보면 부족함이 드러나 실망하기가 여러 번이다.
이렇게 수업료를 꽤나 내고는 마침내 깨달았다. 기라성 같은 대가들이 포진한 난계에서 그런 신품종이 몇 손을 거쳐서 나에게까지 올리가 만무하다고 판단하고 산채품을 찾기로 하였다.
한국춘란을 전문적으로 산채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여러 난인에게 부탁한 결과, 전라남도 신안군에 사는 박영산 씨를 소개받게 되었다. 박영산 씨는 신안에서 30년 넘게 한국춘란을 전문적으로 산채하는 사람으로, 신안군 그 많은 섬의 난초 생태계를 훤히 꿰뚫고 있으며 이미 여러 명품을 산채한 사람이다.
그때부터 인연이 되어 박영산 씨가 산채한 난을 수없이 많이 구입하였다. 그렇지만 몇 년이 지나도 조원상 난인이 기대했던 그런 난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 꽃이 없는 상태에서 구입한 난이라 실망을 거듭하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박영산 씨가 늘 미안해하면서 언제든지 명품을 산채하면 자기에게 준다는 말을 신뢰하면서 한 번도 원망하지 않았고 호형호제하면서 잘 지냈다.
2007년 3월 13일은 그에게 참 특별한 날이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몇 명이 상주에서 밤새 차량으로 달려 새벽에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안개주의보가 내려 여객선이 꽤 늦게 신안으로 출발했다.
신안에 도착해서 박영산 씨의 안내로 신안 하여도 옆에 있는 작은 섬으로 산채를 나섰다. 그 섬에는 소심이 많이 나온다는 말에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채를 시작하였다.
입산한 지 30분쯤 지나서 박영산 씨가 전화로 혼자만 이쪽으로 급히 오라고 호출했다. 허겁지겁 그곳으로 가보니, 놀랜 표정으로 꽃봉오리 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깨끗한 소심 꽃봉오리의 포의 한쪽을 살짝 벗긴 채로 보여주면서 복색소심이라고 했다.
복색은 확연한데 과연 순소심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박영산 씨는 포의 한겹을 마저 벗겨 그에게 내밀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혀 한참동안 말없이 꽃봉오리를 쳐다보고 있다가, 두 손을 떨면서 공손히 받아서 살폈다.
그동안 꿈에 그리던 난초였다. 난초는 4촉으로 건강하였고, 꺾지 않은 꽃대가 하나 더 있었다. 두 사람은 난초를 앞에 놓고 참으로 많은 애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흥정이 이루어지고, 박영산 씨는 대금 중 일부만 지금 주고 나머지는 꽃이 확인된 후에 주면 된다고 했다.
그는 바로 부친께 전화를 했다. 그 당시 부친은 뇌출혈로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받고 계셨다. 이 소식을 전하자. 부친은 그런 난은 애초에 없으니 가져올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도저히 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난이었다. 조원상 난인은 부친께는 말씀대로 하겠다고 하고, 박영산 씨에게 아버지가 가져오란다고 거짓말을 했다.
잘 포장해서 가방에 넣고, 같이 산채 간 일행들에게는 급한 일이 생겼다고 거짓말을 하고 바로 상주로 왔다. 이러한 과정이 꿈같고 혼이 훨훨 날아다니는 무아지경이었다.
가져온 온 난초를 잘 심어놓고 주변 난인들과 상인, 잡지사 기자 등에게 알렸으나 선뜻 밑지 않았다. 복색소심은 자연상태에서 나올 수 없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이날부터 복색소심은 난인들 사이에 화제의 대상이 되었고 수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그러던 중 3월 말이 되자, 하나 남은 꽃대가 움직여 복색에 소심으로 봉오리를 살포시 내민다. 그제서야 다들 맞다고 인정하면서 축하 인사와 함께 분양받을 궁리를 하는 난인이 몰려들었다.
조원상 난인에게는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었고, 더구나 그 난초로 인해 그의 부친 병환도 빨리 회복되었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로 행운을 몰고 온 고마운 '인연초' 였다.
다음해 신아를 받아보니 연한 감중투 무늬로 올라와 급소멸되었다. 그는 확실한 복색소심임을 확신하고, 그의 부친 명의로 '천운소'란 이름으로 명명했다. 천운으로 얻게 된 소심이란 뜻이다. 그가 그의 부친께 명품난을 드리기로 한 뜻을 하늘이 도왔으니 천운이다. 이듬해 봄 아버님을 모시고 산지에 가서 감사의 산신제를 지냈다.
2010년 두 번째 개화 때는 한층 더 홍색에 가까운 복색소심이 피었다. (사)한국난연합회 주최로 거제도에서 개최된 '한국난대전' 에 출품해 특별대상을 수상하고, 함평에서 개최된 '2010 대한민국난명품대제전' 에서 함평군수상을 수상했다. 동양4국의 난인으로부터 관심과 주목을 받는 난이 되었다.
'천운소'는 난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명품 중에 명품 난이며, 한동안 촉당 1억원을 넘는 가격으로 거래되었고, 지금도 수천만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