康法善 월간 「蘭과生活」 편집․발행인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며 일찌감치 난을 접했고, 국립수산진흥원 인천지도소장을 맡고 있던 1979년에 결혼과 함께 아버지에게서 제주한란을 분양받고 본격적인 애란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에 창간된「蘭과生活」이 경제적인 난관에 봉착하자 당시 인천난우회 총무였던 그는 서른넷이라는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蘭과生活」을 인수, 1986년 7월호부터 지금까지 편집․발행인을 맡고 있다.
「蘭과生活」을 인수하며 완전한 난 전문지로 면모를 쇄신시킨 그는 먼저 자신이 발행인으로 만드는 첫호(1986년 7월호)부터 ‘韓國蘭誌上命名展’을 시작했고, 해외취재의 활성과 더불어 난문화 저변확대를 위한 난 관련 단행본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1990년부터 제정된 ‘韓國蘭文化大賞’, 1992년부터 시작된 ‘韓國蘭名品全國大會’, 1993년부터 시작된 ‘자생지복원운동’도 그의 주도 하에 기획, 진행되었다.
잡지인 이전에 애란인인 그는 난계와 화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화백이요, 시인이며, 문학박사이기도 하다. 蘭竹의 宗匠 玉峰 趙基順 스님의 傳法弟子로 1993년, ‘추사 김정희 선생 추모 서예 백일장 휘로대회’에서 묵란으로 사군자 부문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이후 숱한 초대전과 함께 수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다.
중국에서도 전국대회 때마다 초대전을 갖는 등 큰 명성을 얻고 있다. 2003년에는 「예술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2010년에는 원광대학대학원 한국문화학과에서 문학박사를 수여받았다.
1999년에는 월간 「茶道」를 창간하여 지금까지 발간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동안 蘭界와 茶界, 잡지계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으며 공보처장관상(1992), 한국난문화대상(2001), 명원차문화대상(2011), 국무총리 표창(2017) 등을 수상했다.
● 발행인 변경에 즈음하여(1986.10.1)
● 난과생활 대표 강법선 관련 사진
▲ 제1회 한국난문화대상 수상 당시. 수상자 故 정을병, 수여자 강법선 난과생활 발행인 © 난과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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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과생활 주최 제1회 한국란명품전국대회 © 난과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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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과생활 주최 제1회 한국란명품전국대회 © 난과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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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곡 이성보 선생 고희기념 북 콘서트에서 © 주두옥 지역주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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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난전 강법선 난죽전에서 © 난과생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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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잡지의 날 국무총리상 수상 © 난과생활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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