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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사서하는 고생
기사입력  2018/12/02 [01:45]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사서하는 고생

 

추청(秋晴), 오늘 같은 가을 날씨를 말하는 것 같다. 거기다 고추잠자리 군무까지 가세하고 보니 추분으로 가는 계절이 한결 다채(多彩)롭다.

 

이곳 거제에 360㎜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 일주일이 지났다. 세 시간여에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으니, 시간당 100㎜가 넘는 셈이다. 속수무책이었기에 비가 그치기만 기다렸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진흙과의 전쟁이었는데, 이제 겨우 숨을 돌렸다.


복구 작업 도중 며칠 전의 일이 뇌리에 박혀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터에 연결된 호스로 진흙을 씻어내다 보니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 일쑤였다. 관람 차 들린 중년부인과 조우했는데,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며 무어라 말할 것 같더니 그냥 지나쳤다.


한참 뒤에 집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잘 차려입은 중년 부인이 작업복 차림의 모자 쓴 사람이 주인이냐고 묻더란다. 그렇다고 하였더니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이 정도로 조성하려면 적잖은 돈이 들었을 터인즉 쓸데없는 일에 큰돈을 썼다는 것으로, 진작 알았더라면 도시락 싸갖고 와서 말렸을 것이라고 열을 올리더란다.

 

기가 막혀 예전 같았으면 발끈했을 텐데 잠자코 있었다. 집사람도 그 부인의 말에 동조하는 것 같기도 했거니와 한 보름 전에 지은 죄도 있어서였다. 지은 죄는 이러했다.

 

모처럼 집사람을 조수석에 모시고 인근 통영으로 나들이를 했다. 맛집이라도 가는 길이였다면 좋았으련만, 재산관계명시 명령을 받고 법원으로 시간 맞추어 간 것이다. 나와 집사람은 채무자와 보증인이었기에 도리 없이 동행했다.

 

법정에서 재판장의 입정을 기다리다 미안한 마음에 옆자리의 집사람 표정을 살폈다. 다행이 눈을 감고 있었다. 호강시켜주겠다는 약속과는 달리 고생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급기야 법정에 출석시킨 남편, 그래서 집사람의 전화기에 ‘밉상’으로 저장되는 영광을 누렸다.


‘사서하는 고생’, 남들은 돈을 주고 팔아서라도 모면하고 싶은 고생을 일부러 돈을 주고 사서 맞아들인다는 뜻이다. 얼마나 융통성 없고 어리석게 보였으면 그렇게 말했는가 싶어 쓴 웃음을 지었지만, 숫제 틀린 말은 아니라서 머릿속을 맴돌았지 싶다.


전시장과 경내를 가득 메운 진흙은 물로 씻어내면 그런대로 해결되지만, 문제는 물에 젖은 책이며 물건 따위였다. 기회에 웬만한 것은 버리기로 했다. 몇 차례 당한 물난리에 많이도 버렸건만 어느 사이에 또 버린 것만큼 쌓였다.

 

  興一利不若除一害(흥일리불약제일해)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生一事不若滅一事(생일사불약멸일사)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이 말은 야율초재(耶律楚草材)의 명언이다. 그는 칭기즈칸의 책사(策士)였다. 칭기즈칸이 초원의 유목민에 불과한 몽골족을 이끌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낱 피정복민의 젊은 지식인에 불과했던 야율초재를 국사로 중용했던 이유는 천문, 지리, 수학, 불교, 유교, 도교 할 것 없이 당대 모든 학문을 두루 섭렵한 그 탁월한 식견 때문이었다.

 

하늘과 땅과 인간, 그리고 세상만물의 이치를 꿰뚫어보았기에 그가 남긴 이 커다란 가르침은 80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야율초재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으로는 하나같이 스티브 잡스를 꼽는다.
스티브 잡스가 자신이 설립한 애플사에서 쫓겨났다가 복귀할 때는 애플이 거의 망해갈 무렵이었다.

 

그는 복귀 후 새로운 제품들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제품을 제거하는 일을 맨 처음 시도했다. 수십 개에 달했던 제품들을 전문가용, 일반인용, 최고사양, 적정사양 등 단 4가지 상품으로 압축했다.

 

불필요한 기능을 하나하나 제거한 결과 다 망해가던 애플은 세계 1위의 기업이 되었고. 이는 혁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고전을 즐겨 읽었다는 스티브 잡스라서 야율초재의 가르침을 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재는 시공을 초월하며 통하는 바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삶이 허전한 것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비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 하지 않던가. 보약을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하는 것이다.

 

담배를 피워 폐가 나빠지거나 술을 마셔 간이 나빠졌다면 어떤 치료보다 담배나 술을 끊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인 것과 같다. 폭우는 시련을 안겨주었지만, 그로해서 버리는 깨달음도 있었다.


‘사서하는 고생’은 긍정의 의미로 단련을, ‘고생을 사서 하기’는 부정적인 의미로 고행을 뜻한다. 아무튼 내 좋아하는 일이지만 지나치면 인생이 피폐해질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이 가을. 야율초재의 명언을 음미하면서 들어냄의 미학을 실천했으면 싶다.
폭우를 들이마신 동부저수지 물빛이 차츰 맑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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