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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잠꼬대
기사입력  2019/02/07 [21:48]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2019.2.6 수류화개실 일송정에서

 

잠꼬대

 

황금돼지해라는 己亥年이다. 돼지해에 거는 기대가 큰 것은 내가 丁亥年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긴 하나 기대와는 달리 경기는 말이 아니고 하늘은 미세먼지로 온통 잿빛이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어도 추위는 용케 옷속을 파고들지만 예상한 것보다 매섭지 않다. 그래도 난동이란 말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한다. 입방정을 떨다 동장군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워서다.


포근한 날씨 덕분인지 작년 연말에 내가 회원으로 있는 청마기념사업회밴드에 매화의 개화 사진이 올랐다. 12월에 개화 사진을 올린 이는 이곳에서 자동차로 십분 거리에 있는 윤들펜션 주인이었다.

 

그는 그 매화를 윤들매라 불렀다. 윤들펜션은 우리나라에서 매화가 맨 먼저 핀다고 알려진 춘당매가 있는 구조라분교와는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다. 춘당매가 윤들매에게 첫개화의 영광을 양보했지 싶다.


탐매객이 아니나 사람으로 인하여 내상을 입어 신경성위궤양으로 몸져누웠다 일어난 뒤라 윤들매를 보러 나섰다. 내가 무슨 탐매의 호사를 누릴까마는 스트레스를 피하라는 의사의 권유가 한몫을 했다. 십여 그루의 매화나무 중 꽃이 핀 것은 왜소한 두 그루였다. 한참동안 윤들매를 감상하는 도중 한 사람을 떠올렸다.

 

얼마 전 일이다. 부산 강서구 녹산에 산다고 자기소개를 한 박태일 형이 따님과 함께 나를 만나러 왔다. 8년 전에 책을 선물 받고 책값을 드리러 왔다고 한다. 나이 탓인지 기억나지 않아 조금은 민망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책은 ‘난을 캐며 삶을 뒤척이며’이고, 고마움에 거제에 들리면 책값을 드리리라 마음에 두었단다. 그러구러 8년이 지나 해를 넘기지 않으려고 일부러 온 것이었다.

 

선물로 두고 간 밀감 상자 속에 십만 원이 담긴 봉투가 들어 있었다. 작은 후의를 잊지 않고 있었다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의리를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세상에 요즘 사람 같지 않은 그로 해서 내상의 상처가 조금은 치유되는 것 같았다.


이윽고 녹차를 들고 온 펜션 주인은 매화나무 한 켠에서만 향이 난다고 일러준다. 그 한 켠에 서니 청아한 향기가 났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던가,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이 시는 송강 정철, 노계 박인로, 고산 윤선도와 더불어 조선4대 문장가로 꼽히는 상촌 신흠의 시로 조선 후기 사림에서 널리 회자된 유명한 시다.


신흠은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었다. 광해군 때 파직되어 유배되었다. 인조반정 후 이조판서, 대제학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다.


신흠의 청렴을 두고는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장남이 선조의 셋째딸 정숙옹주와 결혼할 때 주위에서 좁고 누추한 집을 수선토록 권유했지만, 집이 훌륭하지 못해도 예를 행하기에 충분하다며 끝내 권유에 응하지 않은 청렴한 선비였다.


위의 시를 살펴보자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가면서도 항상 거문고의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한 평생을 춥게 살아가더라도 결코 향기를 팔아 안락을 추구 않는다.

 

’ 이 구절은 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고 청빈을 즐기는 선비의 기개와, 의리를 무엇과도 바꾸지 않고 자신의 생명처럼 여기는 올곧은 지조를 나타내고 있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지더라도 그 본래의 성질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일지라도 또 새로운 가지가 올라온다’는 구절에서는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백 번을 고쳐 죽더라도 부정과 불의에 저항하는 선비의 충절을 느끼게 된다. 이만하면 어찌 선비라 하지 않으리오.

 

‘선비정신’이란 과연 무엇일까. 옛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군자니, 선비니 하는 말이 사어(死語)가 된 지 오래인 오늘날 선비정신 운운함은 낮도깨비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아니면 잠꼬대라고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모름지기 권력 앞에서도, 돈의 유혹에도 결코 무릎 꿇지 않으며, 대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인성을 갈고 닦아 정의와 공정, 배려와 나눔을 생활화하고, 남을 탓하기에 앞서 자신의 허물을 바로 잡아 남들이 저절로 본받으려 하는 정신이 선비정신이라 말하여본다.


기원전 2세기에 유안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에 ‘蘭生幽谷 不爲莫服而不芳(난생유곡 불위막복이불방)’이란 말이 나온다. ‘난은 그윽한 골짜기에 자라되 맡아 주는 이 없다고 향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매와 난은 꽃이 피는 시기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뿐 선비정신에 있어서는 난형난제다.


지금 우리는 권력과 돈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그야말로 물질 만능시대에 살고 있다. 권력과 돈에 초연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돈이 인간의 전부가 아닐진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선비정신은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옳게 돌아가리라 믿기에 하는 말이다.


선비정신이야 말로 애란인들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라 믿으며 기해년을 맞는다. 미세먼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따사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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