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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보 칼럼> 버려두기
기사입력  2019/07/24 [14:14]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인터넷蘭신문 '난과함께'는 한국의 역사와

애란인의 역사를 기록 보존합니다.

 

 

▲ 한국풍란 무명홍화     ©김성진

 

 

버려두기

 

땀에 찌들은 남편이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아내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제 그만 쉬라는 당부를 빠뜨리지 않는다. 그런 당부에 맞서기라도 하는 양 일에 매달렸는데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기에 장맛비 때문에 쉬기로 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할일이 따로 있었으나 일손을 놓았다. 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둔다는 것이 그토록 좋은 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고문진보(古文眞寶)라는 책에 당나라 문인 유종원(柳宗元)이 쓴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이 나온다. 고문진보는 1275년경 황견(黃堅)의 저술로 알려진 책으로 한시문을 배우는 초학자들의 필독서였다.

 

옛날글 가운데 보석과도 같은 훌륭한 작품을 가려서 모았으며 전집은 시문을, 후집은 산문을 실었다. 종수곽탁타전은 후집에 나오는 것으로 정원사 곽탁타 이야기다. 곽탁타는 곱사병을 앓아 등이 굽은 장애자로 마을 사람들이 그의 등굽은 모습이 낙타와 비슷하다 하여 탁타라 불렀는데, 본인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며 본명을 버리고 스스로 탁타라 불렀다.

 

탁타는 나무 심는 것을 업으로 삼았는데, 권세가가 정원을 가꾸거나 과수원을 하는 사람들이 다투어 그에게 나무를 돌보게 하였다.

 

그가 심거나 옮긴 나무 중 한 그루도 죽는 일이 없었다. 그 어떤 나무든 잎은 무성하고 열매는 충실했다. 다른 식자(植者)들이 엿보거나 흉내를 내었으나 제대로 따라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그 연유를 묻자,

 

 

제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또 무성해지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 속성을 따라 그 천성을 다하게 할 뿐입니다.

 

 

무릇 나무를 심을 때 나무의 본성은 그 뿌리가 펴지기를 바라고, 흙은 평평하기를 바라고, 그 흙이 본래의 흙이기를 바라고, 밟고 다져지는 것도 원래의 밀도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미 그렇게 했으면 건들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으며 버려두지, 다시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무를 심을 때는 자식을 돌보듯 하고, 다 심은 후에는 버린 것처럼 놓아두면 곧 나무의 속성을 온전히 회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저는 나무가 자람을 해치지 않을 뿐 키우거나 무성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열매도 부실해지지 않도록 할 뿐 열매를 일찍 맺거나 많이 맺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와 반대로 다른 식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더군요. 뿌리는 굽게 하고, 흙을 바꾸며 북돋우기도 지나치거나 혹은 모자라게 합니다.

 

나무의 본성을 거스르는 이들은 사랑도 너무 넘치게 하고, 걱정에도 지나친 부지런을 떨기 일쑤지요. 아침에 들여다보고 저녁에 가서 어루만지며, 이미 돌아갔다가도 다시 와서 돌봅니다.

 

심지어는 손톱으로 나무껍질을 벗겨서 살았는지 시들었는지 확인하기도 하며, 뿌리를 흔들어서 그 흙이 성긴지 빽빽한지를 살펴보고야 맙니다.

 

그러니 나무는 천성과 날로 멀어지게 되어 나날이 여윌 수밖에요. 비록 그것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해치는 것이며, 그것을 우려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저와 같이 하지 않으니 제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함에, 물었던 사람이 말했다.

 

당신의 나무재배법()을 관리의 할 일에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탁타는, 저는 나무 심는 것만 알 뿐 관()의 다스림은 제업이 아닙니다. 다만 제가 마을에 거처하면서 백성을 다스리는 나리님들을 보니 지시를 자주 내리기를 좋아하더군요. 백성을 매우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화를 입히는 것입니다.

 

조석으로 관리가 재촉하기를 밭을 갈아라, 뭣을 심어라, 뭣을 거두어라, 누에 쳐서 실을 뽑아라, 옷감을 짜라, 당신네 아이들을 잘 양육하시오, 닭과 돼지를 잘 기르시오. 북을 울려 사람을 모으고 목탁을 치면서 사람을 부릅니다.

 

우리 백성들은 저녁밥과 아침밥을 먹다 말고 관리를 대접하느라 겨를이 없으니, 이러고서야 무슨 수로 백성들의 삶을 번성케 하고 본성을 안락하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가난하고 게을러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나의 업(樹種)과 그것(官洽)은 비슷한 점이 있는 것도 같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물었던 이가 기뻐하며 이르기를,

 

훌륭하오. 그대에게 나무 기르는 것을 물었다가 사람 돌보는 법까지 배웠구려. 이를 전하여 관의 경계를 삼도록 하리라.” 고 하였다.

 

곽탁타의 나무 심는 이야기를 간추려보았다. 곽탁타는 나무 심는 기술이나 요령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무의 본성을 알고 제때에 본성대로 관리해야 하는 방향을 알려줄 뿐이었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된 줄 알고 있다.

 

나무를 가꾸는 일이나 난을 기르는 일이나 사람을 키우고 가르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를 설파하고 있다 하겠다.

 

장맛비 속으로 곽탁타 선생을 그려본다. 나무를 심을 때는 자식을 돌보듯 하고 다 심은 후에는 버린 것처럼 놓아둔다는 글귀가 눈가에 오래 머문다.

 

나를 버려두면 이렇게 좋은 것을, 이제사 알았다니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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