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춘란 두화소심 '일월화' ©일송 김성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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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치지(格物致知)
거제자연예술랜드 대표 능곡 이 성 보
새해 들어 팔순의 이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를 맛보며 돌아가신 어머님의 김치맛을 떠올렸다. 지난날엔 여인의 일생을 일러 김장 30번이라고도 했었다. 김장이 여인에게는 부담스럽기도 하였지만 또한 보람있는 연례행사였다. 따뜻한 마음으로 정을 쏟는 김장버무리기를 30번하고 나면 어느 덧 인생의 종점에 닿기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다.
‘김장 30번’이란 말이 애란인에겐 난꽃 피우기 30번이라고도 하겠다. 난꽃 피우기는 애란인에게 있어 가장 보람되고 희열을 주는 일이기에 그렇게 견주어 보았다. 하지만 난꽃을 잘피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주기 하나에도 10년을 하여 보아야 경험에 의한 묘한 이치를 알게 된다는 미립이 난다고 하였으니 하물며 꽃 피우기에 있어서랴.
사람이 자기의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마와 수련이 있어야 한다. 새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나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알에서 부화되어 깃이 돋아나고 그로부터 날다 떨어지고 하는 수없는 수련과정을 거친 결과다.
사는 곳이 촌구석이다 보니 바둑의 상대가 없어 바둑을 두어보지 못한 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상대방이 바둑통에서 바둑알을 한 점 집어 판 위에 놓는 것만 보아도 대략의 급수를 안다. 초급자는 절대 맵시있게 바둑돌을 놓을 수 없다. 오랜 시간 바둑통에서 돌을 집어 놓는 반복 훈련을 거쳐야만 멋들어진 착점을 할 수 있다.
숙능생교(熟能生巧)란 말이 있다. ‘능숙해지면 기교가 생긴다’는 말로 오랜기간 수련을 거쳐야 뛰어난 기교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중국 송(宋)나라 때 활쏘기 명수인 진요자(陳堯資)와 기름장수 노인(賣油翁)의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북송(北宋)시대의 강숙공(康肅公) 진요자의 활솜씨는 멀리서 동전 구멍을 맞출 정도로 뛰어나 견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교만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어느 날 진요자가 자기 집 뜰에서 활을 쏘고 있었는데, 기름장수 노인이 짐을 내려놓고 서서 구경하였다. 진요자가 쏜 화살은 십중팔구로 과녁에 명중하였다. 그런데 기름장수 노인은 감탄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진요자는 언짢은 마음이 들어 기름장수 노인에게 “그대도 활을 쏠 줄 아는가. 내 활솜씨가 훌륭하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특별한 것도 없지요. 단지 손에 익었을 뿐이지요”라고 대답하였다. 화가 치민 진요자는 “네 어찌 내 활솜씨를 무시한단 말이냐”라고 소리쳤다. 노인은 “저는 기름을 따를 줄 압니다”라고 말하고는 땅바닥에 호로병을 내려놓은 뒤 그 입구에 동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기름을 담은 주걱을 높이 들어올려 동전 구멍 속으로 부어 넣기 시작하였는데, 다 부을 때까지 동전에는 기름이 전혀 묻지 않았다. 노인은 “저 역시 특별한 솜씨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단지 손에 익었을 뿐이지요”라고 말하였다. 진요자는 웃으며 노인을 보내주었다.
이 고사는 구양수의 시문을 모은 ≪구양문충공집(毆陽文忠公集)≫의 <귀전록(歸田錄)>에 실려있다.
이렇듯이 훌륭한 솜씨를 가졌다던지 위대한 사상을 가졌다던지 하는 것은 어쩌다 슬쩍 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금쪽같이 아끼어 잠을 줄이고, 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얻어낸 결정체인 것이다.
난을 처음 시작할 무렵 선배로부터 치(治)․법(法)․도(道)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치법도는 수련을 쌓는 과정을 3단계로 나눈 것으로 치(治)는 입문 단계로 초보를 면하는 과정의 10년, 그 다음 법(法)의 단계는 기(技)를 익히는 과정으로 10년, 도(道)는 기의 완성 단계로 바둑의 경우 입신(入神)에 이르는 과정으로 10년, 도합 30년 정도의 수련을 쌓은 후에야 그 분야에 관하여 언급하였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것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신선도(神仙圖)에는 동자와 백발 노인만 그려져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은 어떤가. 정보의 홍수 속에 남들이 수 십년 각고 끝에 얻는 기술과 지식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일까. 수련 과정이 30년이 아니라 3년만 되어도 대가연(大家然)하는 사람이 쌔고 쌘 세상이니 자못 흥미롭기도 하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양란(養蘭)은 책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난을 가꾸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행위다. 돈 때문에 난을 기르는 것이 아닐진데 자연이 지닌 심오한 철학을 배우는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팔조목(八條目)은 공자가 이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내세운 여덞 가지의 큰 조건과 명제이다. 팔조목의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이다. 격물치지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깨닫는 지경에 이름을 말한다.
격물치지, 애란인들이 새겨둘 말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