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능곡 이성보 선생의 '청복과 지지'에 있는 글로 몇 년전에 쓴 글이다.
박수 칠 때 떠나기
봄기운에다 4월 총선의 열기가 더해져 세상이 온통 부산하다. 금배지를 향한 주자들의 면면을 볼라치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사람도 있거니와, 자신의 위치와 현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상당하다.
오뉴월 화롯불도 남이 내어놓으라면 서운하다 했는데, 하물며 맛 들인 권력에 있어서랴. 사람에게는 저마다 맞는 옷이 있고 걸맞는 자리가 있다고 했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자리에 앉아 주인 행세를 하려 들면 문제가 생긴다. 자신을 망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리가 크면 클수록 큰 탈이 난다.
새 정부 들어 낙마하는 사람들이 많다. 말을 타려 하지 않았다면 낙마하는 일도 없으련만, 공연한 욕심 때문에 뻗친 망신살이 보기에도 민망하다.
권력을 향한 부나비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나 치수가 맞지 않는 옷 정도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이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이참에 마이동풍을 한번 살펴보자.
마이동풍은 이백(李白)이 왕거일(王去一)에게 보낸 화답시 ‘答王去一寒夜獨 酌有懷’의 한 구절이다.
달빛 더불어 북창에 기대어 지은 시부(詩賦)가 아무리 걸작이기로 세인들의 관심 밖에 있으며,
그들의 정신이 아무리 고결하기로 말의 귀에(馬耳) 스치는 동풍쯤으로나 들리는 세상일지라도
어찌 허세에 눈 먼 부류들의 흉내를 낼 수 있으랴. 차라리 달 밝고 차거운 밤중에 독작(獨酌)으로 만고의 쓸쓸함을 씻을지언정 어찌 살겠노라고 썩은 물에 뛰어들 수 있으랴.
천하의 이백이련만 이런 심경으로 시문에 임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니, 당대의 사회 풍토가 어찌 오늘날과 같은지 모르긴 하나 위안이 되기도 한다.
가까운 곳에 공고지란 마을이 있다. 영화 ‘종려나무 숲’의 촬영지이기도 한 공고지는 자연의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종려나무 숲’은 유상옥 감독의 작품이며, 김민종과 김유미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 평론가의 호평을 받았으나 흥행에는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종려나무 숲’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3년 전 거제에서 촬영 당시 풍란을 구하려 나를 찾아온 조감독이란 사람에게 수십 촉의 풍란을 제공하였는데, 덕분에 자막에 ‘협찬’으로 끼게 되었고 시사회에도 초대되었었다. 내가 제공한 풍란은 바위틈에 자생하는 풍란을 김유미가 발견하고 기뻐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함이었다.
공고지엔 종려나무 숲도 볼 만하나 정작 내세울 경관은 동백숲이다. 오솔길을 사이에 두고 하늘을 가린 동백터널은 일품이다. 더구나 오솔길에 도배하듯 깔린 빠알간 동백꽃은 과히 환상적이라 보는 이는 깜빡 가고 만다.
동백 숲길을 두고는 고창의 선운사, 강진의 백련사, 해남의 대둔사, 땅 끝의 미황사가 손꼽히고 있으나 공고지의 동백 숲길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그 운치는 다른 곳 못지않다.
동백은 우리나라 남쪽 해안과 이에 연해 있는 섬들과 제주도에서 주로 자생한다. 동백은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이름이고 중국에서는 산다화(山茶花), 일본에서는 춘(椿)으로 불린다. 꽃잎이 반쯤 벙그면 다 핀 것이며, 화려한 빛깔을 그대로 간직하고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가장 화려할 때 미련 없이 떨어지는 꽃, 그 아름다움은 화우(花雨)라 일컫는 매화나 배꽃의 낙화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상의 많고 많은 꽃들 중 그 화려함의 결정에서 떨어지는 꽃이기에 사람들은 동백숲을 거닐다가도 이를 밟지 않으려 조심한다. 성한 꽃이 떨어진 애처로움에다 꽃이 살아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 싶다.
난꽃은 개화기간이 길다. 한달 정도는 보통이고 길게는 두 달도 간다. 꽃이 피었다 질 때까지 그대로 두는 것은 난에게 무리가 간다. 꽃이 핀 뒤 일주일을 전후하여 꽃대를 잘라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기력을 다한 난에게 휴식을 주는 일이고, 마치 가장 화려할 때 땅으로 자세를 낮추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낙화한 동백꽃을 볼라치면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이 떠오른다. 박수 칠 때 떠나기란 말은 쉬우나 행하기는 어렵다. 동백이 이러할진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해마다 3월이면 애란인들은 돈을 들여 전시회를 마련하고, 삼백육십오일 정성을 다한 작품을 출품한다. 기쁘게 품평을 기대하며 음식까지 장만해놓고 그냥 와서 봐주기만이라도 고대한다.
애란의 길로 한눈 팔지 않고 가는 애란인들, 그들이 가는 길을 이 시대를 향한 이문 없는 애착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